매년 2월, 미국 전역이 들썩인다. 슈퍼볼 때문이다. 미국프로풋볼(NFL)의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4쿼터 60분간 펼쳐지는 한 편의 짜릿한 드라마다. 공격팀은 10야드를 전진해 터치다운을 노리고, 수비팀은 상대의 진격을 막으며 반격의 기회를 엿본다. 흥미로운 점은 하프타임까지 앞서던 팀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판세를 좌우하는 지략과 거친 몸싸움을 버텨낼 체력,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순발력이 승부를 가른다.
지금 세계는 또 다른 슈퍼볼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AI 전문가 6명에게 미중 AI 경쟁을 미식축구 점수로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미국 24점, 중국 18점. 현재 미국이 6점 차로 앞서 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슈퍼볼에서 6점은 단 한 번의 터치다운으로 뒤집힐 수 있는 점수다.
현재 미국의 ‘쿼터백’은 엔비디아다. 첨단 AI 칩을 독점적으로 생산하며 전 세계 AI 개발의 심장부를 장악하고 있다. 오픈AI와 구글, xAI, 앤스로픽 같은 ‘리시버’들은 정교한 패스를 받아 터치다운으로 연결하며 상업화에 성공했다. 미 정부는 수출 통제라는 수비 전략으로 중국의 전진을 막아왔고,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AI판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제네시스 미션’을 내걸었다. ‘제네시스’는 성경의 ‘창세기’를 뜻한다. 미국이 AI로 새 세상을 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작명이 아닐 수 없다.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른 AI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AI 총동원령’이다.
하지만 중국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지난해 1월 등장한 딥시크는 AI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열악한 칩 환경 속에서도 미국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구현해냈고, 오픈소스를 공개하며 전 세계 개발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화웨이, 알리바바, 샤오펑 등 중국 기업들은 이미 AI 및 로봇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마치 노련한 쿼터백이 없는데도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선수들이 합심해 점수를 따내는 ‘언더독’을 연상시킨다. 중국은 지난해 AI를 연구·산업·의료 등 경제 전반에 접목하는 ‘AI+’ 전략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시제품을 완성해 시험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결정이 AI 패권 경쟁에 미칠 영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칩 H200 대중국 수출을 승인한 것이다. H200은 최신 블랙웰 칩보다 한 세대 이전 기술이지만, 중국 화웨이의 최고 사양 칩보다 효율성은 16%, 성능은 32% 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WSJ은 “노쇠했지만 전설적인 쿼터백을 상대 팀에 넘겨준 격”이라고 비유했다. 중국이 이를 지렛대로 미국을 따라잡아 역전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펼쳐지는 미중 AI 경쟁에서 ‘팀코리아’는 어디쯤 있을까. 관중석에 앉아 양국 선수들의 슈퍼볼 게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영국 토터스미디어와 업저버가 세계 93개국 AI 역량과 경쟁력을 분석한 ‘글로벌 AI 인덱스 2025’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재와 산업 생태계 부문에서 각각 13위와 17위에 그치며 한계 역시 뚜렷했다. 분명한 사실은 객석에서는 판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 생존이 달린 AI 경쟁에서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AI 대표 기업을 육성하고, 이들이 활용할 데이터를 통합하며, 전력 인프라를 확충하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 두 발로 뛰지 않으면 우승은커녕 승점도 언감생심이다. AI 패권을 놓고 벌이는 이 지독한 생존 게임에서 어떻게 승점을 내고 살아남을지 전략을 짜고 체력을 길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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