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지급해야 했던 2억 1650만 달러와 이자·소송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게 됐다. 13년 넘게 이어진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에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기존 판정을 전면 취소하면서 론스타가 주장한 6조 원대 손해배상 청구는 단 한 푼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번 결론은 한국 정부가 제기한 ‘절차 위반’ 문제를 취소위원회가 핵심 근거로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19일 ICSID 취소위원회 판정문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승소 배경을 설명했다. 결정적인 요인은 이 사건과 무관한 판결문을 ICSID 재판부가 주요 증거로 채택해 적법절차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받아들여진 점이다. 2022년 ICSID가 한국 정부에 일부 배상 판정을 내릴 때 근거로 삼은 2019년 국제상공회의소(ICC) 판정문은 한국 정부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별도의 사건이었다.
정부는 이런 증거 채택 자체가 국제법상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이라며 취소를 요청했고 취소위원회는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ICSID 재판부가) 대한민국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별건의 ICC 판정문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의 절차상 권리를 박탈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ICSID 취소위원회는 기존 중재판정이 국제법상 근본적인 절차규칙인 적법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그 결과 금융위원회의 위법행위, 국가책임, 인과관계 및 론스타 측 손해를 인정한 부분이 연쇄적으로 취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국장은 “약 13년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취소위원회가 우리 정부의 사실상 완승을 인정한 사건이자,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취소 절차에서 최초의 승소라는 기념비적 의미가 있다”며 “이번 결정은 ‘적법절차에 위배된 증거는 국가책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판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으로 HSBC 매각이 무산됐고 그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총 46억7950만 달러(약 6조8000억 원) 규모의 배상을 청구했다. 2022년 중재판정부는 이 주장 일부를 인정해 한국 정부에 2억1650만 달러 배상을 명령했다. 이에 정부는 ‘금융위의 하나금융 인수 승인 지연이 가격 인하를 위한 자의적 권한 행사라는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며 판정 취소를 제기했다.
취소 절차에서 정부는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은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국제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근거로 삼아 금융위의 위법성을 판단한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는 정부의 변론권·반대신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절차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론스타도 △한-벨기에 투자협정(BIT) 적용 범위·관할 판단 오류 △손해 산정 과정의 절차권 침해 △주요 쟁점 이유 누락 등을 이유로 별도의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2년 4개월간의 심리 끝에 취소위원회는 정부의 논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원 중재판정부가 정부가 빠진 ICC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삼은 것이 국제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중대하게 위배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금융위 위법행위 인정 △국가책임 인정 △인과관계 인정 △론스타 손해 인정 등 관련 판단 전체가 연쇄 취소됐다. 또한 ‘패소자 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론스타가 취소 절차 소송비용 약 73억 원을 30일 내 지급하도록 명했다.
ICSID 협약은 중재 판정 취소 사유로 △중재판정부 구성 하자 △중재인의 부패 △심각한 월권 △중대한 절차 위반 △판정 이유 불기재 등을 규정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서 △중대한 절차규칙 위반 △명백한 월권 △판정 이유 불기재 세 가지를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정 국장은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된 최대규모의 ISDS에서 ICSID 취소위원회가 우리 정부의 사실상 완승을 인정한 사건이자, ISDS 판정 최소 절차에서 최초로 승소한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ISDS 최소 절차에서 우리 정부의 배상책임이 취소된 첫 사례로서 향후 다른 ISDS 사건 대응에도 의미 있는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론스타는 ICSID의 판정 취소 이후 추가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론스타는 “ICSID 취소위원회의 결정에 실망했다”며 “위원회의 결정은 한국 규제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배지분 매각 노력을 부당하게 막고 방해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건을 새로운 재판부에 다시 한번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그 재판부는 한국이 불법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론스타에 손해배상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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