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전제 조건 없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APEC을 계기로 ‘하노이 노딜’ 이후 끊긴 북미 대화가 6년 만에 재개될지 주목된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트럼프 행정부는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도 북한과 대화하는 데 열려 있느냐’는 국내 통신사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어떤 전제 조건 없이 대화하는 것에 여전히 열려 있다”고 답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만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다만 백악관은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는 뜻도 명확하게 드러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 정부의 원칙이자 목표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시도는 있었지만 결과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이미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 만큼 북한이 다른 반응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1일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절대 고수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 무대로 유인하는 메시지”라며 “일단 대화 재개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도로,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북미 대화가 성사된다면 장소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양측 정상의 안전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판문점 등이 유력한 장소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담 참석차 방한하면서 김 위원장까지 만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물론 내년 초로 넘어가 중국 등 제3국에서 만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한 우리 정부의 역할론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정부는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3원칙을 중심으로 한 ‘END 이니셔티브’ 구상을 공개한 후 전략적 투트랙 기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정부 공식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통령실과 외교부에서는 ‘비핵화’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꾸려야 하는 통일부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북미가 서로 간 대화에 집중하는 만큼 우리 정부의 역할이 지극히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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