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대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가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가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3원칙을 중심으로 한 ‘END 이니셔티브’ 구상을 공개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대해 인정할 것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대통령실은 ‘END 구상’에서 비핵화의 비중이 다른 원칙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두 국가론’에 이어 북핵 문제를 두고도 외교·안보 라인 내 자주파와 동맹파가 미묘한 입장 차를 드러내면서 정부 차원의 메시지 조율이 더 섬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은 ‘비핵화 불가’ 방침을 국제사회에 재차 강조하면서 협상력 키우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2025 국제한반도포럼(GKF) 참석 등을 위해 독일을 방문 중인 정 장관은 29일(현지 시간) 현지 기자 간담회에서 “냉정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노딜’로 끝났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북한이 스스로 전략 국가라고 말하는데 전략적 위치가 달라졌다. 7년 전 위치와는 다르다”며 “일단 그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두 국가론’에 대해서도 “데팍토(de facto·사실상의) 국가와 데주레(de jure·법적인) 국가 승인, 그건 공리공담”이라며 “그렇게 해서 교류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튿날인 30일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2025 국제한반도포럼'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의심하는 독일식 흡수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이 아니다”며 “통일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정치적 실체가 있는 국가이며 동독과 북한은 조건과 성격이 다르다”며 “동독은 사실상 소련의 위성국가였으며 냉전 해체기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지만,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공개된 국내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를 후순위로 뒀다’는 지적에 “(END 구상에) 우선순위가 있는 게 아니다. 다 같이 병행하는 것”이라며 “대학을 가려고 국어·영어·수학을 공부하겠다고 했더니 ‘너는 수학은 안 하려는 거구나’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END 구상’에서 비핵화가 중요한 한 축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특히 "비핵화 ‘동결’보다 ‘중단’이 더 강한 개념”이라고도 했다. 외교부도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일관된 목표”라고 의견을 보탰다.
위 실장은 정 장관의 ‘두 국가론’에 대해서도 “남북 사이에는 ‘두 나라가 아니다’라고 합의한 문서가 있다. 그게 남북 기본합의서”라며 “남북 관계는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특수 관계라고 하는 것에서 손을 떼면 북한과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우리가 억지하기 어렵다. 우리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29일(현지 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리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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