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깃털에 불과하다.” 김영삼 정부 당시 총무수석비서관이던 홍인길 씨가 1997년 2월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으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검찰에 했다는 말이다. 그의 말은 “그러면 몸통이 누구냐”는 의문을 낳았고 검찰은 추가 수사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를 구속했다.
‘대통령의 집사’로 일컬어지는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다. 직제상 대통령 비서실장 직속 1급 비서관으로 인사 관리는 물론 재무·행정 업무를 총괄한다. 특수활동비 등 영수증이 없는 예산도 다루며 과거에는 ‘대통령 통치 자금의 관리자’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역대 정부 총무비서관은 주로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았다. 홍 전 총무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6촌으로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후 재정 담당 비서로 일하며 ‘상도동의 집사’로 불렸다. 노무현 정부의 최도술 총무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교 1년 후배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같이 일했다. 이명박 정부의 김백준 총무비서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대 선배로 ‘왕(王) 비서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박근혜 정부의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정호성·안봉근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의원 당시부터 보좌해온 ‘문고리 3인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만사현통’으로 불리던 김현지 총무비서관을 제1부속실장으로 발령낸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대통령실 대변인 등 참모진의 인사 이동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김현지 총무비서관’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두고 여야가 한창 충돌하던 중 단행된 돌출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 대통령을 경기도지사 때부터 보좌해온 성남 라인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김현지 지키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대 총무비서관들 상당수는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과 특권을 누리다가 정권 후반기 레임덕과 맞물려 구속되는 등 흑역사를 반복해왔다. 새로 보임된 윤기천 전 제2부속실장을 비롯한 새 정부 총무비서관은 어떤 길을 갈까. 비극적 전철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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