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7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공공 주도로 2030년까지 135만 가구를 착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수도권에서 총 7만 5000만 가구 이상 착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더욱이 LH가 택지개발촉진법 등에 따라 조성 중이거나 조성 예정인 공동주택 용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LH가 직접 시행하도록 법 개정까지 예고했다. 민간이 부동산 호황기에는 개발 이익만 누리고 불황기에는 착공이나 공급을 하지 않아 신규 주택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LH에 택지 조성부터 공급까지 맡겨 안정적인 공급 물량을 확보해 주택 가격 급등 등의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은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대책에서 건설사에 자금 조달과 설계·시공 등을 전담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분양이 발생하게 되면 자금 조달을 담당한 건설사들은 미분양에 대한 공사비 회수 지연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도급 공사비만을 받는 건설사들이 얼마나 참여할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또 LH가 공공택지에서 직접 시행을 하려면 택지 조성에 투입된 자금 회수가 지연되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그동안 택지를 만든 뒤 민간에 매각해 택지 조성 원가를 회수하고 이윤도 얻었는데 공공주택 분양과 입주 이후에 자금을 회수하면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LH가 직접 시행한다면 공공주택의 분양가는 기존보다 더 저렴해야 한다. LH가 민간 건설사와 동일한 이익을 취한다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LH가 얻는 이익은 더 줄어들고 미분양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부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전기요금 인상 지연으로 한때 수십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처럼 LH의 부채 규모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실제로 LH의 재무 건전성은 악화일로다. LH의 2025~202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LH의 올해 부채 규모는 170조 1817억 원, 내년 부채 규모는 192조 459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 비율은 올해 말 226.1%에서 2026년 말에 239.0%로 상승하고 2027년 말에 250.5%로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공공 주도의 공급 대책은 주택 가격 급등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실효성이 낮은 공공 주도의 공급 대책과 LH의 재무 구조 악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LH가 낮은 임대료와 분양 수익으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린 영국의 신도시개발공사(New Towns Development Corporations)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신도시개발공사는 영국 정부가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주택난 해결을 위해 신도시의 설계와 토지 매입, 주택 건설, 기반 시설 공급까지 모두 주도하도록 한 공공기관이다. 하지만 재정 부담과 효율성 악화로 실패한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서울의 강남 3구에서 시작된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이 마포와 성동·강동구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정책은 서울의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을 막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서울에서 공급된 주택의 88.1%를 민간이 공급했고 나머지 10%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담당했다. 결국 LH가 공급한 서울 지역 주택은 2%에 불과하다. 정부가 수도권에서 2030년까지 135만 가구를 착공하도록 지원한다 해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지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이 주택 매수에 나서면서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의 급등세가 서울 지역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재개발과 재건축 활성화를 통해 신규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재건축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불길을 잡는 방법은 재건축과 재개발 등 정비 사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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