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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칼럼] 속자생존 시대에 경제정책은 ‘신호등’

獨 ‘신호등 연정’ 정책 갈등으로 붕괴

李정부 정책, 기업 지원·옥죄기 혼재

주요국 기업, 정부 뒷받침에 속도전

‘짬뽕정책’ 벗어나야 저성장 늪 탈출





독일 ‘신호등 연정’의 붕괴 원인은 정책 갈등이었다. 연립정부에 참여한 사회민주당(SPD), 자유민주당(FDP), 녹색당의 상징 색이 각각 빨강·노랑·초록이어서 이같이 불렸다. 2021년 구성된 연정에 참여한 세 정당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경제정책 조정을 놓고 충돌했다. FDP는 기업의 법인세 인하 등을 요구했으나 SPD와 녹색당은 반대했다. FDP는 국가부채 확대에 제동을 걸었으나 SPD와 녹색당은 외려 확장 재정을 시도했다. FDP는 원전 확대를 역설했으나 녹색당은 격렬히 반발했다. 지난해 11월 FDP의 탈퇴로 신호등 연정은 3년 만에 와해됐다. 정책이 냉·온탕을 오락가락한 탓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2023년과 지난해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0.9%, -0.5%로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신호등 연정을 연상시키는 짬뽕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을 내세워 기업 주도 성장을 외치지만 실제 정책이나 입법은 세 갈래라는 것이다. 기업·시장 친화 정책 외에도 친노조 및 기업 부담 가중 정책, 어중간한 내용 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면서 친기업 정책을 내세웠다. 이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며 과감한 규제 정리를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최근 의원들에게 “야당 때처럼 기업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신청을 마구잡이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과 ‘더 센’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주4.5일제 입법화를 추진하자 기업 옥죄기 및 친노조 행태라는 비판이 나왔다. 여당이 하청 근로자에게 원청에 대한 교섭권을 인정하는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킨 뒤 하청 노조원들은 원청을 겨냥해 “진짜 사장 나와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의도가 의심스럽거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자 야당은 “대장동 사건 배임 혐의 기소자가 수혜 대상자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관되게 친시장 정책을 추진해야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끌어올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경제 펀더멘털 수술을 미루고 주가만 일시적으로 부양하는 정책을 편다면 저성장·저고용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다. 노동계 눈치만 보면서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정책을 펴고 나랏돈을 펑펑 쓰는 선심 정책에 의존한다면 경제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칠 것이라고 한국은행이 전망했다.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대만에 역전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년 동안 반도체·석유화학 등 8대 주력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뒷걸음질 쳤다. 이대로 가면 우리 역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피할 수 없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빠르게 전개되면서 ‘속자생존(速者生存)’이라는 말이 나온다.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전쟁과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첨단기술 산업 육성과 핵심 제조업 부흥에 나섰다. ‘중국 제조 2025’를 내세워 일사불란하게 규제 혁파와 보조금 지급 등 총체적 지원에 나선 중국은 향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인공지능(AI), 로봇 등 모든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급속히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은 철강뿐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도 한국을 추격하는 것을 넘어 추월해가고 있다. 일본과 대만, 유럽연합(EU) 등도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글로벌 속도전에서 생존하려면 포퓰리즘 정책을 접고 구조 개혁과 초격차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노조를 설득하면서 노동 개혁을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기업들에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산업 정책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제는 주요국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 지원으로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 우왕좌왕하는 신호등 정책으로 우리 기업들의 고속 질주를 가로막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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