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의 안전 확보와 재해 예방·근절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삼성과 CJ제일제당에서 40여 년간 제조 현장을 이끌며 안전 경영의 최전선에 섰던 김근영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은 최근 출간한 책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통해 “중대재해는 반드시 예방할 수 있다”고 확언했다.
김 전 부사장은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CJ제일제당에서 일하면서 반복적인 안전 사고와 품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구조적 개선을 추진해 왔다”며 “안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리더십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1986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한 그는 삼성코닝에서 유리 제조 전문가로 근무했다. 제조 부문에서 혁신 성과를 인정받아 1996년 삼성그룹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CJ제일제당으로 자리를 옮겨 신동방CP 대표와 부산공장 공장장 등을 역임하며 제조 부문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앞장섰다. CJ그룹에서 안전경영실장과 식품생산지원실장(부사장)도 지냈다.
김 전 부사장은 책 집필 배경에 대해 “현 정부 들어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며 “제조 현장에서 경험한 안전 경영과 리더십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0여 년간 꾸준히 안전 경영 시스템을 실행하며 중대재해는 반드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면서 “징벌 위주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현장의 불안전한 요소를 제거하는 게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업의 경영자와 리더, 그리고 정부 책임자들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사장은 “중대재해 관련 도서는 많지만 대부분 발생 이후의 대응책에 집중한다”며 “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초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사고 수습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며 “처음부터 돈을 제대로 써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결국 기업에도 이익”이라고 조언했다.
기억에 남는 중대재해 사례를 묻자 그는 7년 전의 한 끼임 사고를 떠올렸다. 한 근로자가 저속 회전 설비에 끼여 3개월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사망한 사건이다. 그는 “사고자의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가족에게까지 닥친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며 “그때 더 이상 사망 사고는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가동 중 설비에는 절대 접근 금지’라는 원칙을 세우고 ‘노터치 캠페인’을 6년간 이어갔다. 그 결과 끼임 사고 발생률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김 전 부사장은 중대재해의 근본 원인으로 ‘불안전한 상태와 불안전한 행동’을 꼽았다. 그는 “사업장 내 불안전한 상태를 제거하고 불안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안전 제일 문화를 조성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것도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안전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철저히 지킨다면 사고 발생 확률은 지속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와 한계, 법 시행 후 변화에 대해 입법 취지대로 CEO의 책임을 강화한 점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현장의 개선보다 법적 방어에만 치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부사장은 “사고의 결과가 아닌 예방 과정을 보고 징벌을 결정해야 한다”며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과 실행에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이번 책에서 안전 경영의 본질과 시스템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각 기업이 현장에 맞는 실천 대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돕겠다”며 “요즘 기업 등에서 강연 요청도 들어오고 있는데 10월부터는 강연을 통해 안전 경영 전파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이어 “기업은 방어적 태도가 아닌 진정성을 갖고 안전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며 “모든 근로자가 안전 규범을 철저히 지키고, 안전 제일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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