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문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답답함에, 굳이 일개 변호사의 목소리를 얹어보고자 한다.
판결 이유에서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판결문이 그 근거로 인용한 판례를 찾아보는데, 대중에게 공개돼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없는 상황에 가끔 부딪친다. 그럴 때면 ‘장미의 이름’이 연상되면서 도대체 내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과도한 익명화 때문에 마치 암호문을 읽는 것처럼 불편하다는 지적 또한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특허나 상표 분야에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아예 판례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애초에 특허와 상표 제도 자체가 공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굳이 판례에서 익명화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공개된 판례는 ESG 캠페인에서 지우라고 독려하는 이메일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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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판결은 종종 ‘제1심 판결 몇 쪽 몇째 줄에 다음을 삽입한다’, ‘몇 째 줄부터 몇 째 줄을 다음으로 대체한다’는 식으로 작성된다. 제1심 판결이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의 문제점은 말할 것도 없고, 공개돼 있는 때에도 판결 정본에 나온 대로의 페이지와 줄에 관한 정보는 알 수 없기에 문맥에 기대 항소심 판결의 논리를 어림짐작해야 한다. 판결문 작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기에는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나라는 법률 조항에서 출발해 연역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대륙법 체계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과 같이 보통법 체계에 따르는 국가에 비해 판례의 중요성이 낮다고 한다. 이는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맞는 말이다. 대륙법이든 보통법이든, 법은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정당한 질서를 밝혀 내려는 여러 사람들의 지혜가 축적되고 응축된 결과이다. 법률 조항을 마치 종교 경전처럼 고정시켜 놓고 제사장에게 해석과 적용을 독점시킬 것이 아니라면, 판결은 마땅히 전면 공개를 원칙으로 함이 옳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가 포함돼 있다. 아무 언급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전면 공개 원칙’이 아니라 ‘공개범위 확대’라니, 무엇이 그리 조심스러울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판결문 전면 공개를 미룸으로써 사법에 대한 신뢰 제고와 법리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이제라도 하루속히 전면 공개 원칙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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