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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과징금·등록말소…재계 "건설업 발빼는 기업 생길 수도"

[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매년 8곳씩 과징금 철퇴 가능성

올 4명 사망 사고 한 건설사

'영업익의 5%' 적용땐 60억 내야

처벌 일변도 정책, 경영 위축 우려

노동계는 "소규모 업장 더 지원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 법인에 대한 과징금(연간 영업이익 5% 이내·하한액 30억 원)이 시행 첫해부터 건설사에서 적용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건설사는 매년 사망 산업재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사고 위험이 높은 업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적 제재보다 산재 예방에 방점을 찍었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정부 안전 대책이 처벌 일변도로 기울어 경영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15일 발표한 ‘노동 안전 종합 대책’의 핵심은 경제적 제재 방안이다. 앞으로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법인은 연간 영업이익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물게 된다. 당초 국회에서는 매출액 기준 방안이 논의됐지만 기업 경영 부담을 고려해 영업이익으로 결정됐다.

과거 사례를 보면 과징금을 내는 기업은 매년 7~8곳 정도 발생할 수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 법인은 2023년에 8곳, 지난해 9곳, 올해 상반기까지 4곳이다. 21개 기업 중 11곳은 건설사였다. 올해만 4명의 사망 사고를 낸 건설사 A사의 경우 이 과징금 제도를 적용하면 지난해 영업이익 1203억 원의 5%인 약 60억 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건설 경기가 풀릴 경우 건설사가 내야 할 과징금은 100억 원 단위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A사는 2022년 영업이익이 2716억 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였다.

과징금 외에도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경영에 큰 변수가 될 대책들도 시행된다. 정부는 ‘동시 2명 이상 사망’이던 영업정지 요청 요건에 ‘연간 다수 사망’을 추가했다. 다수의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예년 추세를 보면 적지 않은 대형 건설사가 신설된 기준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올 상반기 재해 조사 기준 사고 사망자 287명 가운데 138명은 건설업 근로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 2회를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 발생 시 건설사의 등록 말소 요청 규정도 새로 마련했다. 중대재해가 반복된 기업은 3년간 공공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된다. 또 이들 기업은 대출금리, 대출 한도, 보험료 등의 부분에서 금융 제재 대상에 놓인다.

정부는 안전사고에 취약한 사업장에 대한 지원과 관리·감독을 확대한 것이 대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안전한 사업장 지원 내년 예산은 2조 723억 원으로 올해보다 4733억 원 증액됐다. 정부는 사망 산재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의 구조 개선을 위해 공공·민간 발주자에게 적정한 공사비를 산정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한다. 또 정례적으로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단속에 나선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61만 곳의 사업장을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산업안전감독관이 증원되고 지자체는 일부 근로감독 권한을 받는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만 적용되던 작업중지권이 중대재해 위험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된다. 또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의 경우 시정 지시 없이 사법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노동계는 이번 대책을 환영하면서도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효과를 내기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전체 산재 사망의 약 80%가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현장 수요에 맞춰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작업중지권 확대 등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노동계 판단인데,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계는 이번 대책이 기업의 부담만 과도하게 늘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대책처럼 강력한 엄벌주의 기조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인지 의문스럽다”며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공공입찰 제한, 건설사 등록 말소 요건 강화 등은 기업 경영을 제한하고 기업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전 강화를 현실화하기 위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모든 안전 문제의 책임이 건설사를 향해 있는데 정부나 공공기관도 신도시 등 개발 공사를 발주할 때 안전비 등을 고려한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싼 가격에 경쟁적으로 입찰하다 보니 안전 문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건설 업체 때리기’ 정책이 계속될 경우 대기업들이 ‘돈 안 되고 리스크만 큰’ 건설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결과적으로는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부동산 산업에 전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 영업이익률이 3% 내외로 마진이 크지 않은 편인데 한번 사고가 나면 오너 일가에까지 책임을 묻고 징벌적인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업 메리트가 크지 않다는 생각으로 점차 발을 빼려는 곳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구체적인 기준과 추가 대책 마련 여부를 노동계와 경영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또 범부처 상설 특별위원회인 안전한일터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산재 예방 5개년 계획을 만들기로 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올해를 산재 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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