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의 가격 거품이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버블 때보다 심각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16일(현지 시간) 자산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1990년대 IT 버블과 현 AI 버블의 차이점을 들자면 현재 뉴욕증시 시총 상위 10개 기업이 1990년대 상위 10개 기업보다 더 고평가됐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슬록 이코노미스트가 공개한 뉴욕증시 상위 10개 기업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30배에 육박해 25배 안팎이던 2000년 IT 버블 정점 시기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는 전 세계 기업 중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4조 달러(약 5550조 원)를 돌파하며 기업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최근 뉴욕 증시는 관세 불확실성에도 다시 전고점을 돌파하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AI 관련 기업들을 중심으로 시장은 크게 반등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술주들은 지난 4월 '해방의 날'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관세 폭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지만 최근의 주가 반등은 투자자들이 관세 위협을 무시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월가에서는 대형 빅테크들의 주가가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비싸다는 지적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다만 주가 상승이 기업이익 증가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2000년대 IT 거품 붕괴와는 다른 양상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기술주들은 올해 1분기 어닝 시즌에서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 상승세를 뒷받침한 바 있다.
BofA의 투자전략가 엘야스 갈루는 "기술 부문의 최대 우려는 밸류에이션"이라며 "펀드매니저들은 지난 100년 동안 비싼 시장 중 하나를 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존 히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AI 기업 주가의 상승은 평가가치 상승보다는 기업이익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며 "미 증시가 내년 말까지 빅테크 부문을 필두로 강세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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