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밤중의 계엄 선언으로 전 국민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10일 새벽 두 번째로 구속 수감됐습니다. 계엄 사태는 비교적 빠르게 진정됐지만 정치적인 상흔은 엄청났습니다. 계엄 여파로 윤 전 대통령이 끝내 탄핵됐고, 이재명 대통령이 새롭게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수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뒤를 받치는 거대 여당으로 거듭났습니다. 반면 하루아침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국민의힘은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란 공범’이라는 불편한 수식어를 여전히 떼지 못하면서 내홍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양상입니다. 민주당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국민의힘을 겨냥해 ‘카운터 펀치’를 날리려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습니다. 정당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하거나, 사망 선고와 다름없는 ‘정당 해산’까지 등장했습니다.
국민의힘에 들이댄 ‘파산 청구서’
민주당의 차기 유력 대표 주자인 박찬대 의원은 8일 동료의원 115명과 함께 ‘12·3 비상계엄의 후속조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내란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박 의원은 “민주당의 심장 호남에서 윤석열 내란을 완전히 종식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가기 위한 특별법 발의를 보고드린다”고 천명했습니다. 이 법안은 내란범 사면·복권을 제한하고, 내란재판 전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며, 내란범의 인사를 무효로 하는 등 내란 사태의 후속 조치를 위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눈에 띄는 항목이 있습니다. ‘내란 죄로 형이 확정된 자가 소속한 정당 및 해당 범죄 행위시 소속했던 정당에 대해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이라는 부분인데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윤 전 대통령이 속했던 국민의힘을 겨냥한 내용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고 윤 전 대통령이 내란 수괴 혐의 재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지난해 12월 3일 이후 국민의힘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등 정당보조금을 모조리 환수할 수 있게 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보조금으로 총 1487억 원을 챙겼습니다. 2022년 기준 국민의힘 전체 수입 중 보조금은 약 602억 원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두 번째로 많았던 당비 290억 원의 두 배를 넘습니다. 이 보조금은 정당 운영을 위한 비용과 정책 개발비, 선거 관련 비용(선거보조금 한정) 등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조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면 없어진다면 국민의힘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겠죠.
‘끝장을 보자’ 정당해산까지 나왔다
민주당에서는 이보다 더 강력한 법안도 나왔습니다. 박홍근 의원이 3월 대표 발의한 정당법 일부개정안인데요. 박홍근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당원인 대통령이 내란·외환죄로 파면되거나 형이 확정된 때에는 정부는 지체없이 헌법재판소에 소속 정당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뿐인가요. 이 경우 해당 정당은 향후 가장 먼저 실시되는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파면된 자리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거죠. 박찬대 의원의 내란특별법이 국민의힘을 ‘말려 죽이는’ 방식이라면 박홍근 의원의 발의안은 ‘때려 죽이는’ 식입니다. 정당의 명줄을 아예 끊어버린다는 점에서 과도하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박홍근 의원은 단호합니다. 그는 “정당의 활동은 (소속된)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해 상응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책무”라며 “당원인 대통령의 내란·외환죄에 대해 소속 정당의 엄중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당해산, 가능한 얘기인가요?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해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은 정당해산의 심판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심판의 결과로 정당 해산이 결정되면 중앙선관위가 정당법에 따라 정당해산을 집행하죠.
실제로 정당해산이 이뤄진 경우도 있습니다. 2014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통합진보당 해산입니다. 통합진보당은 2011년 12월 진보 진영의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일부가 힘을 합쳐 창당한 정당입니다. 이듬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지역구 7석 등 13석을 확보하면서 주목받았죠. 하지만 이후 내부 분열로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계파 간 갈등으로 부정경선과 폭력 사건, 의원 제명 논란 등이 이어졌고 결국 국민참여당계와 진보신당계가 탈당하면서 민주노동당계만 남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9월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됏고요. 이후 정부는 같은 해 11월 국무회의를 거쳐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구하는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1년 넘게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거쳐, 결국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은 해산이 결정됐습니다.
국민의힘의 운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실제로 정당 해산의 운명에 놓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해산은 감정적인 접근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박홍근 의원이 낸 법안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실제 중앙선관위는 이 개정안의 정당해산 조항에 대해 “당원인 대통령의 행위를 정당의 행위로 귀속시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의무화하는 것은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박찬대 의원이 낸 내란특별법도 현실화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에 대해 “헌법을 무시한 정치 보복 법안일 뿐”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두 법안은 실제로 상대 당을 직접 공격하려는 의도보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더 강합니다. 계엄 사태로 야당으로 밀려난 국민의힘이 빨리 정신을 차리고 국민을 바라보는 정당이 되라는 ‘회초리’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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