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작업중지권이란
시행 시기 | 1995년 |
법 조문 | 산안법 제52조(급박한 위험 있는 경우 작업 중지·대피) |
쟁점 | -노동계 “행사 시 불이익 만연·권한 범위 확대 필요” -경영계 “쟁의행위로 악용·과도한 규제·기존 제도 충분” |
이재명 정부의 노동 국정과제에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작업중지권’이 담긴다. 노동계는 법적으로 보장된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개선책을 요구해왔다. 반면 경영계는 작업중지권 보장이 과도한 규제이며 노동조합이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과 정책협의를 하면서 작업중지권 보장이 고용노동부 노동 국정과제에 담길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과제에 포함된다는 것은 대통령 대선 공약인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가 사용자에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부여’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가능한 정책으로는 모호한 기준 정비, 노동조합(근로자 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 권한 부여, 작업중지권 행사 시 불이익 금지 강화 등이 거론된다.
작업중지권 보장은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산업재해예방 대책이다. 노동계는 1995년부터 법적으로 보장된 작업중지권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개선해 달라 요구해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52조는 근로자가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근로자는 작업중지권 행사로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작업중지권 관련 대표적인 사례는 2023년 11월 대법원 판결이다. 해당 판결은 2016년 유해가스가 유출된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A씨가 직원들을 대피토록 한 것이 정당한지를 가렸다. 당시 사측은 A씨가 직원들을 무단 이탈하게 했다고 징계를 내렸다. 징계가 부당하고 주장한 A씨는 1~2심에서 패소했지만 대법원은 7년 만에 A씨의 손을 들어 줬다.
‘작업중지권 사각지대’와 관련한 우려는 대기업 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높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약 13%에 불과한데, 대부분 노조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쏠려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작년 6월 발표한 산안법 개정안 입법영향분석보고서는 “작업중지권이 노조 영향력이 큰 자동차, 철강 분야 대기업에서 큰 어려움 없이 행사되고 있으며 중소 규모 사업장이나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중지권이) 사문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 특성인 원·하청 구조가 산재 위험이 하청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해 발표한 작업중지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A조선업체는 2012~2022년 산재사망자가 20명인데, 이 중 18명이 하청근로자다. B조선업체도 2017~2022년 9월 산재사망자 65명 중 47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하청 근로자가 원청 근로자 보다 위험한 작업을 많이 하는데다 사고 위험 요인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 관리자에게 사고 위험을 알리면, 원청 관리자는 하청업체에 전달한다”며 “하청업체는 하청노동자에게 ‘내부고발을 했다’는 식으로 비난이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의사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의 사망산재가 늘어나는 원인 또한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작업중지권 보장은 이재명 정부가 하청 근로자 안전을 강조함에 따라 정책화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초 인천에서 일어난 맨홀 내 질식 사고와 관련해 7일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한 바 있다. 이 사고도 다단계 하청 구조 탓에 안전관리 체계가 미흡한 것이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고 수사를 맡은 고용부가 원·하청 구조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다.
경영계는 작업중지권 보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작업중지권 보장이 자칫 노조의 쟁의 행위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또 근로자와 작업 환경에 대한 고려없이 일률적으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수면 위로 오른 ‘폭염 때 작업중지권 보장’도 경영계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현행 법은 폭염 때 사업주에게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의무화했지만 작업중지권은 권고 사항 수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 작업중지권 강화 법안에 대해 “기후 여건은 사업주가 통제할 수 없고 사업장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여건에 맞게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며 “획일적인 규정 신설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사업장 특성에 따라 체감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작업중지는 탄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폭염과 한파로 작업중지가 이뤄지는 동안 생산량 감소, 납기일 지연, 수출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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