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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한국판 태양의 서커스' 입소문…2030도 즐겨찾죠"

창단 100주년 맞은 동춘서커스단 박세환 단장

신성일·정훈희·이주일도 거쳐가

TV드라마 인기·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때 마다 국민 도움으로 극복

생사륜·단지돌리기 등 18개 공연

15년째 무휴…내년 기네스북 도전

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이 7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커스단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들어간 곳이 바로 동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올해 여든한 살이니까 평생을 동춘에 바친 셈이죠.”

1925년 5월 전남 목포에서 출발한 동춘서커스단이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았다. 일본 서커스단 출신인 박동수 씨가 한국인으로 꾸려진 서커스단을 처음 세웠고, 지역 거점별로 하나둘 서커스단이 생겨나면서 서커스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신성일·배삼룡·이주일·남성남·정훈희 등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동춘을 거쳐갔을 정도로 유명 연예인을 배출하는 등용문으로 평가받던 시절도 있었다.

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은 7일 서울 독산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방송보다 동춘 무대에 서기를 원하는 예술인들이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던 만큼 입단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면서 “사람들이 이제 서커스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세상 최고의 무대”라고 강조했다.

전국구인 동춘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전국 각지를 돌며 관객을 끌어모으던 유랑 극단 동춘은 서커스 외에도 연극, 차력 쇼, 신파극, 국악, 마술 등 다양한 콘텐츠로 3시간 분량의 공연을 선보이며 흥행 돌풍을 이어갔다. 박 단장은 “동춘은 지금으로 치면 소속 연예인 수백 명을 거느린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였다”며 “가수와 배우들에게는 동춘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1960년대에 방송국이 막 생겨났지만 신인들은 선배들이 없어서 배울 것도 없었고, 스타들은 돈이 안 되던 곳이어서 서로 동춘 무대에 서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3대 단장인 그는 동춘서커스단의 산증인이다. 1963년 만 스무 살의 나이에 동춘에 입단해 사회자·연기자·가수로 활동해오다가 1978년 서커스단을 인수해 단장으로 다시 48년을 함께했다. 그는 “따로 사업을 하던 중 동춘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 만에 찾아갔더니 낙타·침팬지·사자·호랑이 등 서커스단 동물들이 나를 알아보더라”면서 “동물들이 굶고 있다기에 밥부터 먹였다”고 껄껄 웃었다. 당시 잠실아파트 3채 값을 주고 인수했는데 단원 중 하나였던 코끼리 값만 5억 원을 호가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동춘서커스단의 ‘생사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고난도 공연인 생사륜은 두 명의 곡예사가 공중에서 쳇바퀴처럼 도는 장비에 몸을 맡긴 상태로 아찔한 무대를 선보인다. 사진 제공=동춘서커스단


인수 직후 지방 순회공연을 재개하면서 전일 전석 매진으로 4~5년 만에 투자금을 전부 회수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서커스단 최고의 인기 스타 코끼리 ‘제니’가 죽으면서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TV 연속극 ‘여로’가 히트를 치면서 그 많던 서커스단이 한순간에 싹 사라졌어요. 낮에는 새마을 사업한다고 바쁘고, 밤에는 TV 본다고 집 밖으로 나오지를 않으니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춘의 상징과도 같은 제니까지 죽었으니 손발이 다 잘려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최악의 위기는 2003년 태풍 ‘매미’가 강타했을 때다. 지방에 설치한 천막이 찢어지고 무대가 산산조각 나면서 한동안 공연을 열지 못했다. 어렵사리 고비를 넘겼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신종플루가 덮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연이은 악재에도 가까스로 버티다 결국 2009년 11월 폐단을 결심했다. 동춘을 인수한 지 31년 만이다. 박 단장은 “당시 단원이 50명 정도였는데, 하루 관객이 10명도 채 안 됐으니 공연을 할수록 적자였다”고 기억했다.



박 단장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연말에 경기 김포시 실내체육관 1500석을 빌려 고별 공연을 열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이었는데, 공연 1시간을 앞두고 밖으로 나가 보니 관객이 한 명도 안 보여서 진짜 망했다 싶었으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공연 직전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는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면서 ‘우리가 안 도와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여론이 일면서 25일 동안 열린 공연이 모두 매진됐고, 그동안 쌓인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면서 “고비 때마다 항상 국민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동춘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이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커스단의 운영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동춘서커스단은 2011년 경기 안산시 대부도에 상설 공연장을 마련하면서 유랑 극단 시대를 마감했다. 연극, 국악, 차력 쇼 같은 추억의 무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저글링, 링 체조, 단지 돌리기, 공중 로맨스, 생사륜 등 40여 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박 단장은 “천막 극장 시절에는 여름만 되면 폭우와 태풍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이 한 해도 없다”면서 “상설 공연장이 마련된 후에는 비바람 걱정이 사라졌다”고 웃어보였다.

서커스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한 때 300여 명에 달하던 단원은 현재 30여 명으로 줄었다. 특히 경기를 많이 타는 까닭에 관객 수가 최근 눈에 띄게 줄었다. 박 단장은 “동춘서커스단 공연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며 서커스의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해외에서나 보던 서커스단 공연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에 동춘을 찾는 20~30대 젊은 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춘서커스단의 생존 가능성을 캐나다 ‘태양의서커스’에 빗대 설명했다. 박 단장은 “태양의서커스가 11가지 프로그램으로 1시간 40분 공연을 하고 관람료로 20만 원을 넘게 받는데, 동춘서커스단은 6분의 1 가격으로 18가지 프로그램을 1시간 30분 풀타임 공연을 한다”면서 “공연 수준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단일 프로그램으로 15년째 연중무휴 무대를 이어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하다”며 “내년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동춘서커스단 곡예사가 단지 돌리기 공연에서 무거운 항아리를 머리로 받치고 있다. 사진 제공=동춘서커스단


박 단장은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아 상설 공연장 바로 옆 부지를 매입해서 천막 극장이 아닌 상설 극장과 대중문화기념관, 서커스 아카데미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동춘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갈 후계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그는 “6년 전에 막내아들에게 서커스단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무대·조명·연출 등 서커스단 운영에 필요한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면서 “대물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가업승계를 통해 동춘서커스단의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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