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소상공인·자영업자 악성 채무 탕감 정책과 관련해 “갚을 능력이 되는데 빚을 탕감해줄지 모르니 7년 신용불량으로 살아보시겠냐”고 반문했다. 부실 채무 탕감 정책에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같이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다만 “정상적으로 갚는 분들도 많이 (채무를) 깎아줄 생각이고 앞으로도 (탕감 제도를) 추가할 생각”이라며 성실 채무자를 위한 정책도 고민 중임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충청에서 듣다, 충청 타운홀 미팅’에서 “7년 동안 연체되고 5000만 원 이하 장기 연체 소액 채권은 탕감하자”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압류·경매를 당하고, 신용불량자가 돼서 거래도 안 되고, (통장이 없어서) 월급·일당·보수를 못 받으니 알바도 못하는 삶이 7년이면 도덕적 해이는 가능하지 않다”고도 했다.
실제 현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은 ‘배드뱅크(장기 연체 채권 처리 기구)’ 설립으로 금융위원회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중심이 되는 상법상 주식회사 형태의 배드뱅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이번 배드뱅크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무담보 개인 채권을 주요 매입 대상으로 한다. 정책이 시행되면 약 113만 명의 장기 연체자가 총 16조 4000억 원 규모의 채무 조정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채무 탕감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사람들이 빚을 지면 신용불량이 된다. 통장이 있으면 압류당하니 취직도 못 하고 아르바이트도 못 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 하면 정부 입장에서 보면 손실”이라며 “이런 것을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 차라리 못 갚는 게 확실한 건 탕감하자. 이게 모두에게 좋다”고 주장했다. 그는 “갚을 능력이 없고 재기 불능이라면 능력의 일부라도 인정해주는 게 파산·회생 제도”라며 “사회 전체로 보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주도한 ‘주빌리은행’을 언급하기도 했다. ‘주빌리’의 어원은 성경의 희년에서 유래한 용어로 죄와 빚을 탕감해주는 해를 뜻한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은 “성경에 보면 50년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도 해방시켰다”며 “지금은 문명 시대인데도 빚이 상속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성실 채무자’로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이 “성실하게 상환한 사람들에 대한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자 이 대통령은 “이번 추가경정예산에 성실 채무자 대책이 많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난 광주·전남 타운홀 미팅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시민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이번에는 시민만 참석했다고 설명했지만 대통령과 소속 정당이 다른 지자체장이 불편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시민들은 야당 지자체장으로 바뀌면서 지역화폐를 폐지하는 바람에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결국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투표하고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하면 국민들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겠냐”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권역별 타운홀 미팅이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한 장면이다.
과학 분야 특화 지역인 대전에서 열린 행사인 만큼 전임 정부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원성도 쏟아졌다. 김재경 KAIST 교수는 매년 3%의 안팎의 정률 R&D 예산이 인상되는 독일 막스플랑크협회의 예를 들며 예측 가능한 예산 필요성을 건의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한 시민은 “R&D 예산 삭감으로 국책연구소가 몰려 있는 대전 지역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새 정부가 앞장서)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기술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지원하고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실 세종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개정 문제여서 그렇게 쉽지는 않다”면서도 “최대한 빨리 와보도록 하겠다”고 지역 민심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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