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 이후 세계 기축 통화로서 달러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위안화와 유로화 모두 글로벌 금융 시스템 내에서 달러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대안적 기축통화로서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새로운 글로벌 통화 질서를 추진하면서 위안화의 비중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질문에 대해 “중국이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18일 중국 인민은행 판궁성 총재가 “달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배적인 통화로 자리잡아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해지만 단일 통화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앞으로 글로벌 통화 체제는 (위안화 등) 여러 주권 통화들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베선트 장관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해당 통화가 자유롭게 거래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중국은 자유롭게 전환할 수 없는 비가환통화(non-convertible currency)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기축 통화가 되느냐”고 강조했다. 비가환통화는 외화 거래에 제약이 많은 통화를 의미한다. 베선트 장관은 “중국에는 14억 명의 인구가 돈을 해외로 빼내고 싶어한다”며 “중국에는 자본 유출 통제도 있다”고 짚었다. 위안화가 국제 사회에서 자유롭게 거래되지 않는 이상 세계 기축 통화 지위에 오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베선트 장관은 유로의 부상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베선트 장관은 “얼마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만났는데, 그는 ‘이번이 유로의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며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유로 환율이 달러 당 1.2달러를 넘어서면 유럽인들은 ‘유로가 너무 강하다’며 불평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수출 주도형 경제이기 때문에 유로의 글로벌 수요가 늘어나 가치가 오를 수록 유럽 경제에는 오히려 부담이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올 들어 달러지수가 약 11% 떨어지는 등 달러 가치가 1973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만 해도 관세 정책의 영향으로 달러 가치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었지만, 4월 2일 고강도의 상호 관세와 급격한 정책 전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독립성 우려 등이 겹치며 달러는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최근 추세가 달러 환율의 문제를 넘어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 약화일 수 있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도 이와 관련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지금이 “글로벌 유로의 순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베선트 장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예측은 계속 있어왔다”며 “이번에도 회의론자들이 틀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강달러 정책의 핵심은 (환율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적절한 정책을 펼치느냐에 있다”며 “우리는 경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 하며 세계 자본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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