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공급 위축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민간 정비사업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재초환은 과도한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재건축 수익성 하락으로 민간 사업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은 신축 아파트 물량의 약 80%를 민간 정비사업에 의존하는 만큼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민간 이익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국 재건축 부담금 부과 예상 단지는 총 58곳으로 집계됐다. 조합원 가구당 예상 부담금은 평균 1억 328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29곳)의 부과 예상 단지가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11곳), 대구(10곳), 부산·광주(각각 2곳) 등의 순이다. 이는 2018년 이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단지의 예상 준공 시점 등을 시뮬레이션해 도출한 결과다. 서울의 평균 예상 부과액은 1억 4741만 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서울에서도 가장 금액이 큰 A단지는 예상 부과액이 가구당 3억 9000만 원으로 추산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고 예상 부과액 단지는 2021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서울 반포주공1단지 3주구(래미안 트리니원)로 추정된다”며 “잠실주공5단지 등 사업성이 높은 곳일수록 부담금이 눈에 띄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이 조합원 가구당 8000만 원을 넘으면 해당 금액의 10~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재건축 조합 설립 시점부터 준공 시점까지 오른 집값 상승분에서 단지가 위치한 자치구의 평균 집값 상승분과 공사비 등을 제외해 계산한다. 이 제도는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과도한 개발이익을 환수해 투기를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다만 과도한 정부의 규제라는 지적에 2014년 시행이 유예됐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다시 부활했다.
이후 실제 부과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위해 재초환 폐지를 추진하면서 제도 자체가 사문화됐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과 현실화에 무게를 두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정비업계는 미뤄졌던 재초환 부담금이 올해 안에 부과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재초환 제도를 담당하는 국토부 1차관에 개발이익 환수를 강하게 주장해왔던 이상경 가천대 교수가 선임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초환에 따른 부담금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당장 공급 감소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분석 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중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된 물량은 4594가구로 전체(4998가구)의 91.9%를 차지했다. 서울 공급 물량의 정비사업 비중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영향으로 분양이 급감했던 2021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80~90%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택지로 개발할 수 있는 빈 땅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제외하면 거의 남지 않은 만큼 정비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 아파트 공급 물량은 내년부터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R114 등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 8614가구로 올해 예정 물량(4만 6748가구)보다 40% 가까이 감소한다. 같은 기간 전국 입주 물량이 25.1%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감소 폭이 훨씬 가파르다. 공급 감소 원인으로는 공사비 급등이 꼽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5월 건설공사비지수(2020년=100)는 131.01로 2018년 5월(93.78)보다 40% 가까이 뛰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수년간 공사비가 30% 급등한 상황에서 재초환은 맞지 않는 옷”이라며 “용적률 상향으로 사업성을 높여주면서 그만큼을 부담금으로 다시 거둬가는 조삼모사식 정책으로는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유인하기에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조합들은 재건축 부담금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서울 강남권 부담금 부과 1호 단지이자 2021년 입주한 반포현대(현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조합은 지난해 서초구를 상대로 부담금 부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한 바 있다. B조합 관계자는 “같은 해에 준공하는 단지 중 어느 한 곳이 관리처분계획 인가 시점에 따라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등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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