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협상 중인 국가들을 상대로 4일(현지시간)까지 ‘최선의 제안(best offer)’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상대국에 합의안을 제시할 전망이다. 상호관세 유예 종료일(7월 9일)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미국 법원이 관세에 제동을 거는 등 난항이 이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상대국과의 협상 지연을 차단하고자 하는 취지로 관측된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입수한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서한 초안을 바탕으로 이같이 보도했다. 서한은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를 대상으로 작성됐으며, 서한에는 이들 국가와 회의 및 서류를 교환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해당 서한이 이미 발송됐는지 여부와 발송 대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한에는 상대국에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와 쿼터(수입할당량) 제안 △비관세 장벽 개선 계획 △디지털 교역과 경제 안보와 관련한 약속 △기타 국가별 추가 약속 등을 기재하라는 요구가 담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들의 제안을 며칠 내로 평가하고, 상호관세율을 포함한 타협 지점(possible landing zone)를 제시할 계획이다.
USTR은 이번 서한에서 상대국이 최근 미국 법원이 1심에서 상호관세에 제동을 건 판결을 협상 지연 요인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했다. USTR은 서한에서 “미국 법원에서 대통령의 상호 관세 조치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 다른 강력한 법적 권한을 통해 해당 관세 프로그램을 계속할 계획”이라며 “이 문제(관세 협상)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앞서 미국 국제무역법원(USCIT)과 워싱턴 연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IEEPA)를 통해 무제한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점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현재 이 판결들은 항소심 법정으로 넘어갔다.
USTR은 이번 서한에 대해 협상 진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자는 “여러 주요 교역 파트너와 생산적인 협상이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며 “진도를 점검하고 어떤 다음 단계를 평가하는 것이 모든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통신에 말했다.
로이터는 이번 서한이 상호관세 유예 종료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긴급한 상황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조야에서는 그간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이 여러 국가와 무역 합의가 임박했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무역 협상에 대한 진척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협상을 타결한 주요 교역국은 영국뿐이며 그마저 완성된 합의라기보다는 향후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뼈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호관세 유예 종료일이 다가올 수록 무역 상대와의 협상은 오히려 서로 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전날 “미국은 스위스 제네바 회담 이후에도 (AI칩 수출통제,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등) 중국에 대한 차별적 제한 조치를 계속 새로 내놓았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서 “중국이 무역 협정을 위반했다”고 비판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와 관련 “나는 (미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이번 주 대화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확인할 수 있다”며 협상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레빗 대변인은 통화가 이뤄질 날짜를 밝히지 않았으며 통화 성사를 보장하지도 않았다”고 짚었다.
유럽 역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상향 예고에 다시 한번 보복관세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4일부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매우 유감”이라며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예정된 조치와 추가 조치가 7월 14일부터 자동으로 발효될 것”이라며 맞불 관세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담당 집행위원은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를 계기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추가 관세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금까지 미국은 두 주요 교역 상대 중 어느 쪽과도 돌파구를 마련될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긴장을 높이는 발언을 하면서 갈 길이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세 등의 쟁점을 두고 입장차가 첨예한 일본과의 협상은 정상 차원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을 한 달여 앞두고 양국 간 관세협상 타결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차례 회담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15∼17일께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양국 정상회담을 여는데 이어 같은 달 24∼25일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한 차례 더 만나 회담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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