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초음파 영상만으로 치명적인 '좌심실비대'를 진단하고, 그 원인까지 구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윤연이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연구팀은 자기공명영상(MRI) 대신 심장초음파 영상만으로 좌심실비대의 원인을 감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좌심실은 폐에서 산소를 받은 혈액을 온몸으로 내보내는 심장의 핵심 부위다. 좌심실의 벽(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져 심장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좌심실비대'라고 한다. 좌심실비대는 고혈압 환자의 약 9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하면서도 심부전, 심장마비 등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고혈압 외에도 비후성 심근병증, 심장 아밀로이드증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원인 질환에 따라 치료법과 예후가 달라지므로 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좌심실비대를 진단할 땐 1차적으로 심장초음파를 시행한 다음 MRI 같은 정밀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의료진의 육안으로 심실 내 미세한 구조 차이를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가 검사 등의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원인 질환 진단이 지연되고 치료가 늦어져 악화되는 사례가 많았다. 자칫 심부전, 돌연사 등 중증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진단 방법이 요구돼 온 실정이다.
연구팀은 심장초음파 영상에서 심근의 미세한 패턴과 형태 변화 등 총 1만9839개의 특정 정보를 수치화한 다음 질환별 패턴을 AI에 학습시켰다. 이를 토대로 좌심실비대 여부 진단은 물론 고혈압성 심장병, 비후성 심근병증, 심장 아밀로이드증 등의 원인 질환을 구분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
외부 병원의 독립된 데이터를 이용해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한 결과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좌심실비대에 대한 진단 정확도는 96%로 확인됐다. 심장 아밀로이드증과 고혈압성 심장병은 각각 89%, 83%의 진단 정확도를 보였다. 좌심실비대의 대표적인 원인 질환 3가지 모두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고혈압성 심장병의 진단 민감도는 75%로 기존 심장초음파 방식(33%)보다 크게 향상됐다. 비후성 심근병증의 F1 점수도 0.57에서 0.87로 높아졌다. 민감도는 실제 환자를 놓치지 않고 찾아내는 비율이며, F1 점수는 진단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함께 평가하는 지표다. 전반적으로 AI 모델이 기존 방식보다 우수한 진단 성능을 보였음을 뜻한다. AI가 분석 과정에서 중요하게 판단한 영상 부위를 시각적으로 표시해주기 때문에 의료진이 직접 그 근거를 확인할 수도 있다.
윤 교수는 “좌심실비대의 원인 규명이 지연되면서 치료 기회를 놓치거나 나쁜 예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AI 기술로 1차 검사인 심장초음파 단계에서 원인 질환을 보다 빠르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향후 진단이 어려운 파브리병, 다논병 등의 희귀질환이나 운동선수에게서 나타나는 생리적 좌심실비대의 감별을 돕는 AI 모델로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심장협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Circulation: Cardiovascular Imaging’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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