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협상 과정에서 내용과 형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당사국 간 신뢰다. 24일(현지 시간) 2+2 협의를 마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협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해 상무부 등과 쌓은 신뢰 등이 자산이 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카운트파트너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화장실에서 만나 메이저리그(MLB)를 소재로 스몰토크(small talk·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은 것이 주효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2+2 협의의 첫 관문은 무사히 넘겼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국은 6월 3일 대선을 치르며 새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시한은 7월 8일이다. 차기 행정부에서 대미 협상을 주도할 산업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누가 낙점되고, 인사청문회를 거쳐 실질적으로 업무에 투입되는 데까지 족히 한두 달은 걸릴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초대 산업부 장관인 백운규 전 장관을 대통령 취임(2017년 5월 10일) 두 달여가 지난 7월 3일 지명했고 그의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7월 20일이었다. 관세 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최대한 빨리 임명한다고 해도 7월 8일까지는 촉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간의 협상 내용이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관련 일본과의 협력 여부가 꼽힌다. 안 장관은 “LNG를 논의할 때 한국만 해서는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일본과 대만·베트남 등 아시아의 LNG 주요 수요국이 협의체 등을 만들어서 진행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며 일본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고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중국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2+2 회의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전해지지만 한미가 의견을 모은 4대 의제 중 관세·비관세 다음으로 적시된 두 번째 의제가 경제안보였다. 향후 미국이 우리에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중 정책 역시 정부 성향에 따라 온도 차가 있었던 만큼 자칫 향후 한미 협상 과정에서 돌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새 정부 협상팀이 기존 협상을 뒤집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려고 하면 협상 자체가 기약 없이 늘어질 게 뻔하다. 이 경우 일본 등 주요국은 마무리해 상호관세율을 낮추는 반면 우리만 상호관세를 부과받고 이후에는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협상 결과가 알려진 25일 한미 관세 협상을 주도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겨냥해 “파면된 정부가 국익이 걸린 중대한 협상을 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미 무역 협상만큼은 당파를 넘어선 국익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한미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당을 막론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 협상팀은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국회에 보고하고 국회에서는 협상 팀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면서 향후 전략을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8%(2023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말 그대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정치권이 한미 협상을 놓고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기에는 닥쳐올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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