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작성을 한참 하다 문득 자판을 본 적이 있다. 많은 자판 키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 키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열심히 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판 속 오른쪽과 왼쪽에 자리잡은 시프트(shift)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시프트 키는 우리가 대문자나 느낌표 같은 특수 문자를 입력할 때 쓰고 다른 키와 함께 쓰면 기존 기능을 확장해 주기도 한다. 방향의 변화·전환을 의미하는 ‘시프트’가 일반 키들이 고유 역할에 더해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AI 기술은 우리 일상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AI는 제조업이나 금융·제약 산업을 넘어 우리 일상 속까지 들어왔다. 청소기 속에 탑재된 AI는 최적의 청소 경로를 찾아내고 AI 스피커는 때론 친구처럼 때론 비서처럼 뉴스를 읽어주며 자율주행 기술은 운전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등 AI는 시프트 키처럼 기존에 해오던 방향에 변화를 주고 더 나은 것으로 전환을 가능하게 해준다.
AI 기술은 정부의 시스템과 업무에도 스며들어 효율과 혁신의 원동력 역할을 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 기술을 적극 도입해 업무 방식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부에서 최초로 국제 AI 경영 시스템(ISO/IEC 42001) 인증을 취득해 디지털 행정 역량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에 앞서 재작년에는 연간 80만 건 이상 들어오는 수입 식품 검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위험 예측 및 전자 심사(SAFEi24)’ 시스템을 구축했다. 예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보고 서류 심사를 했지만 이제는 AI가 365일 24시간 자동으로 검토하고 문제가 없으면 수입을 승인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행정 절차를 자동화한 첫 사례다. 의약품 허가 심사 분야에도 ‘AI 심사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AI가 그동안 축적된 허가 심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례를 분석하고 허가·심사 기준과 비교해 심사자의 평가를 보조한다. 올해 정보 전략 계획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식품과 의약품 안전 데이터 분석에 AI를 활용해서 보다 촘촘한 감시와 단속을 수행한다. 온라인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불법 유통 사례와 허위·과대 광고를 차단하기도 하고 소비자의 민원이나 신고 등 정보를 분석해 각종 위험 실마리를 탐색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AI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산업계와의 소통에도 AI 기술을 활용한다. 식품 표시 기준이나 화장품 법령·가이드라인 등과 같이 유사한 질문이 많은 분야에 대해 24시간 언제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생성형 AI 기반의 챗봇을 올해부터 각각 시범 운영한다.
식약처는 직원들의 AI에 대한 관심과 역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식의약 AI 러너’는 AI 활용법을 배우고(Learner), 업무 적용 사례를 전파하며(Runner),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내부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기술 혁명의 시대다.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함께할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식의약 안전 관리에 AI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 식의약 산업과 국민 건강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시프트’의 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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