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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하며 돌아올 것만”…‘아리셀 참사’ 유족의 멈춰버린 삶

사고진상 규명 위해 대표 집·모회사·용산 ‘백방’

유가족 최현주씨 “반 미친 것처럼 찾아다녔다”

‘그만하자’ 만류에도 “남편 명예지킨단 소망뿐”

문제 산적…사고 전 6개월 중단 후 개선 건의도

8월 1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열린 '아리셀 공장 화재 희생자 49재'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가 일어난 지 6개월하고 보름이 지났네요. 아직도 (남편이) ‘나 왔어’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

작년 6월 23명의 사망 화재사고가 일어난 2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했던 김병철씨 아내 최현주씨는 울분을 터트렸다. 남편인 김씨는 사고 당시 이주노동자였던 직원들을 위해 닫혔던 철문을 뜯어내다가 결국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편을 잃은 최씨의 삶은 멈췄다. 그는 아리셀과 관련된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사고 규명 부처인 고용노동부, 아리셀 제품 납품처인 국방부, 아리셀 대표인 박순관씨의 자택,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 에스코넥 납품처인 삼성에서 ‘남편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사고 수사를 맡은 검찰, 법원뿐만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도 아리셀 대표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했다. 최씨는 “반은 미친 것처럼 돌아다녔다”며 “시댁과 친정 식구들이 ‘할 만큼 했다, 이제 정리하고 합의하는게 어떠냐’고 만류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만둘까’도 싶었다고 했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란 질문이 머릿 속에 가득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최씨는 결국 ‘답’을 찾았다. 고인이 된 남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최씨는 “(남편은) 아리셀을 정말 좋은 회사로,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 만족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다”며 “본인의 전문분야인 배터리와 컴퓨터책 이외에 경영,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사고 강의를 들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최씨는 남편의 진짜 회사 사랑은 회사의 나쁜 점을 고치는 일이었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6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아리셀 대표에 대한 첫 공판기일 때 검사는 남편이 사측에 제기했던 건의를 공개했다. 남편은 “아리셀 문제 해결을 위해 6개월간 모든 업무를 멈추고 원인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최씨는 “남편이 종종 ‘아리셀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고칠 것이 많다’ ‘하지만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했다"며 “내가 남편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6개월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인 이병렬씨가 쓴 호소문이다. 사진제공=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수원지법에서 아리셀 참사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이 열린 8일 최씨를 비롯해 유가족들은 아리셀 대표에 대한 엄정 처벌을 요구했다. 라오스에서 온 주이씨를 잃은 남편 이재홍씨는 “아내는 ‘내가 하는 일이 원래 용접인데 용접일을 시킨다’고 걱정했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며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는 근로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원통해했다. 25살 딸을 잃은 이순희씨는 “이렇게나 문제 많았던 회사에서 일을 막지 못해 가슴을 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딸을 따라 가고 싶었지만, 원한이라도 풀어줘지하는 생각에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이병렬씨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젊은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며 “정의롭고 평당한 판결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아리셀 대표는 이날 “죽을 때까지 속죄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모인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박순관은 참사 이후 단 한번도 가족들 앞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에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의 안전관리의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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