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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트럼프 리스크보다 외교 양극화가 큰 문제…정쟁 악용시 대가 혹독”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한미일 협력 구도 변화…외교만은 초당적 정책 대응을

동남아·호주·인도로 전략공간을 확대해야 국익 극대화

미중관계 과몰입은 ‘약소국 멘탈’, 외려 약점 노출시켜

韓 역량·동맹가치 스스로 과소평가, 자신감있게 외교를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한국 외교의 최대 리스크는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과 외교정책의 양극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2025년 1월 20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 동맹을 중시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 외교’가 트럼프식 거래에 기반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로 전환함에 따라 국제 질서의 급변이 예고되고 있다.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 연쇄 탄핵 정국이라는 초유의 국정 혼돈에 더해 리더십 공백 상태로 대외적 불확실성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인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시대에 한국 외교가 어려워지는 것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우리 외교 정책의 양극화”라며 “대(對)북한·일본은 물론 대미 외교까지 극한 정쟁에 휩쓸린다면 매우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 원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을 굳건히 하는 한편 동남아시아·호주·인도 등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지역으로 외교 전략 공간을 넓히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극심한 정국 혼란에도 “우리의 역량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고 단언한 손 원장은 “기죽지 말고 자신감 있게 외교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은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가.

△일명 ‘트럼피즘’으로 불리는 ‘트럼프 현상’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독특한 지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미국의 변화, 특히 국제사회에서 미국 패권의 쇠퇴가 반영된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 행동 규범, 절차, 제도 등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고 국제 질서를 조성·유지하는 ‘자비로운 패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이 국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패권국 역할 대신 두 가지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하나는 우세 전략이다. 전체 국제 질서를 주도하기보다 강대국 간 경쟁에서 도전국에 대해 확실한 우세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에 대해 적어도 군사·첨단기술 면에서는 현격한 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억제 전략이다. 글로벌 개입을 축소하되 미국의 국익과 중국에 대한 우위를 지키는 데 필요한 경우에 한해 선택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고립주의와는 다르다. 앞으로 미국은 우크라이나·중동의 전쟁이나 유럽 이슈에서는 발을 빼면서도 인공지능(AI) 경쟁, 미국의 일자리 창출 등 트럼프가 생각하는 국익이 걸린 사안에는 강력하게 개입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은 한미일 협력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트럼프가 한미일 3각 협력보다는 양자 테이블에서 미국에 유리한 거래를 원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중국에 우위를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트럼프 역시 한미일 구도를 유용하게 여길 것으로 본다. 다만 중국 억제와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되는 부분에만 3국 협력의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다. 북한 억제를 원하는 우리와는 목적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한미일 3각 구도에서 한국의 입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중국의 첨단산업 견제에 대한 동참을 강력하게 요구하면 우리의 딜레마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일 구도에서 우리의 입지가 약화한다는 의미인가.

△힘에 의해 규정되는 국제정치에서 주연은 미국이고 우리는 조연이다. 그게 현실이다. 트럼프 시대에는 그 현실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3국 협력의 틀 속에서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국익을 찾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일반론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주어지고 이 틀에서 벗어나면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솔직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북미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가.

△조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하면 북미 대화의 가능성은 당연히 크다. 다만 당장 정치적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북미 대화의 인센티브가 양쪽 모두에 크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참전으로 북한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러시아와 밀착한 덕에 국제 제재를 회피하면서 달러화를 벌어들이고 첨단기술도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금 북한은 굳이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트럼프 역시 외교 안보에서 북한이 후순위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기 종식돼 북한의 입장이 달라지면 국면이 바뀔 수 있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우리의 국정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데 대해 우려가 크다.

△8년 전 트럼프 1기 정부 출범 전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았지만 크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트럼프 집권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한국의 역량이 약하지는 않다. 사실 ‘트럼프 리스크’ 못지않게 우려하는 것은 우리 외교 정책의 양극화·정쟁화다. 외교 부문에서 보수·진보 진영의 괴리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진보 진영은 현 정부의 북한·일본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심지어 대미 정책에서도 그 간극이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부터 사도광산 문제 등 대일본 정책의 양극화는 극심하다.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정권의 향방에 따라 대일본 정책이 달라졌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부터 한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그럴수록 양측은 대일 문제를 놓고 더 치열하게 싸우고 분열될 수밖에 없다. 대북 정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경각심을 갖고 이 같은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외교 정책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단기적으로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초당적 외교 정책 결정의 중요성을 꾸준히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리더십이 취약한 탄핵 정국에서 외교의 정쟁화를 강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외교가 정쟁의 소재로 악용되면 매우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극화는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장기적으로는 정치 개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선거 제도와 권력 구조 개혁 등을 통해 정치 체제를 바꾸고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202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향후 한일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우리나라의 리더십이 사실상 공백 상태이고 일본 이시바 시게루 정권의 리더십도 극도로 취약하다. 미래 한일 관계의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시점에 양국의 국내 정치가 흔들리면서 한일 관계의 리스크가 커진 게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양국 관계가 다소 후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 차원의 상호 이해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는 결국 다시 호전될 것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 개선이 윤석열 대통령의 영단의 산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으로 상부구조의 걸림돌이 제거된 것은 맞지만 그에 앞서 관광 활성화와 대중문화 소비를 통해 민간 레벨의 상호 인식이 호전된 것이 보다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외교 정책의 정쟁화가 한일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저변의 토대가 단단해진 만큼 관계가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첨예화할 미중 대립 구도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외교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동맹인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고 한미·한미일 협력을 굳건히 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과 가치 확립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한국 외교는 압도적으로 미국 중심이었지만 쇠퇴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만 붙잡고 있어서는 미래의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없다. 동남아·호주·인도 등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부상할 지역들에 대해 보다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미중 관계에 대한 과몰입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미중 관계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중 구도에서 벗어나 전략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프레임이었는데도 발표 당시 중국의 반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는 전형적인 약소국 멘탈이다. 미중이 우리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인 것은 맞지만 이를 과도하게 의식해 스스로를 제약할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에 더 이용당할 수 있다. 너무 기죽지 말아야 한다.

-‘조연’인 한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미 관계를 놓고 보자. 미국에 한국과의 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강건했던 때보다 쇠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동맹의 부가가치가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데도 우리 스스로는 반대로 생각하고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 군사적으로나 제조기술 면에서나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조선업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트럼프가 알려준 뒤에야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과 세계적 위상을 깨닫지 않았는가. 대중문화 역시 일본이 ‘한류’라는 말을 만들고 중국에서 팔리니까 그제서야 K문화의 실력을 알게 됐다. 최근 정치적 격변 와중에도 우리가 스스로 위축되고 왜소화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의 역량을 알고 자신감 있게 외교에 임할 필요가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익 극대화를 위해 동남아시아와 호주, 인도 등으로 외교 전략적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He is…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와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및 언더우드국제대학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8년부터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국제정치학회장과 현대일본학회장, 연세대 국제대학원장과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개념전쟁’ ‘일본:성장과 위기의 정치경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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