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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세기의 이혼'이 쏘아올린 공

사회부 김선영 기자





“저뿐만 아니라 SK그룹의 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또 훼손됐습니다. 비자금이 SK그룹을 일궜다는 오명을 반드시 벗겠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기자 간담회에 예고 없이 등장해 개인적인 일에 앞서 그룹 차원의 피해를 막겠다고 밝혔다. 그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상기된 표정도 읽혔다.

이달 초 열린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항소심 선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이 SK그룹에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일부 인정됐다. 동시에 잠시 잊혀졌던 ‘독립몰수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의 해외 도주나 사망 등의 이유로 재판이 불가한 사건이거나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 씨가 가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제기됐다. 대법원이 자택 별채에 대한 압류가 정당하다면서도 당사자가 사망한 이상 추가 추징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었다. 전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 2205억 원 가운데 미납금은 867억 원이다.

독립몰수제는 정치인과 기업인만을 겨냥하는 제도가 아니다. 유죄 판결 전까지 부당이득을 환수하지 못하는 법적 공백은 범죄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고스란히 서민들의 피해로 직결된다. 이마저도 범죄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면 사실상 ‘눈 먼 돈’이다. 텔레그램으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을 비롯해 수많은 보이스피싱과 다단계 사기 범죄의 근절을 위해 독립몰수제가 대안으로 거론돼왔다. 법무부가 2021년 유죄 판결 이전에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단 한 번도 국회의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부각되면서 독립몰수제를 담은 형법 개정안이 재차 발의됐다. 헌정 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사망 이후에도 공소를 제기, 불법적으로 축적한 재산을 몰수해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대법원의 판결로 이혼소송을 매듭짓는다. 하지만 29년 만에 베일을 드러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여전히 환수할 방법이 없다. 세기의 이혼이 독립몰수제 도입에 불을 붙였다면 국회는 입법에 동력을 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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