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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에도 클래식 선율…'전국구' 마을 됐죠"

◆주국창 계촌 클래식 축제 초대위원장

폐교 위기에 오케스트라 창단이 출발

정몽구 재단·한예종, 축제 파격 지원

전학·은퇴자 유입에 마을 인구 늘어

'클래식 듣고 자란 농작물' 브랜드화

올초 20여년 만에 전통 5일장 개장

주국창 계촌 클래식 축제 초대 위원장(현 고문)이 강원도 평창군 계촌초등학교 교정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둔내 인터체인지(IC)에서 42번 국도를 30분가량 달리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여느 산골 마을과 다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널따란 잔디밭과 공연장 같은 가설무대가 보이는가 하면 거리 곳곳에 설치된 여러 형태의 클래식 조형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마을 가로등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세계적 수준의 클래식 공연으로 ‘전국구’로 떠오른 계촌마을이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는 인구 1700여 명의 산골 마을이지만 지난달 31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제10회 계천 클래식 축제에는 모두 2만 명가량의 인파가 모였다.

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7일 축제의 발상지인 계촌초등학교에서 주국창 초대 축제위원장(현 고문)을 만났다. 계촌초교 졸업생인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계촌마을로 귀향해 계촌 클래식 축제의 서사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2015년 첫 축제 때 이장이었던 그는 7년 동안 축제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계촌별빛클래식연주단’의 발표회를 지원하겠다고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재단이 비용을 대고 한예종이 아이들의 연주를 가르친다는 것이죠. 그때 발표회로 끝내지 말고 축제로 판을 키우자고 요청했습니다. 당초 강당에서 하려던 발표회를 운동장에서 하고 아이들 공연 외에 다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추가하자고 제안했죠.”

주 위원장은 “예산이 당초보다 엄청나게 늘어나는데도 재단 측에서 흔쾌히 수락해 클래식 마을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예종은 출연진 섭외 등 1년에 걸쳐 공연 전반의 기획을 맡았다. 정명화 첼리스트가 때마침 한예종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첫 축제부터 3년 연속 축제에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주 위원장은 “축제 때 정명화 팬분들이 관광버스 몇 대에 나눠 찾아오셨다”며 “정명화 님의 참가는 축제 초기에 계촌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22년 축제에서는 밴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며 클래식 신드롬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참가하면서 축제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올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별빛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고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성진·김선욱의 협연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축제 메인 무대가 열리는 계촌 로망스 파크 내 클래식 조형물. 이곳은 원래 주차장으로 쓰다 축제 규모가 커지면서 메인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계촌 클래식 축제의 시작은 2009년 계촌초교 학생 전원이 참여하는 계촌별빛오케스트라 창단에서 비롯된다. 당시 권오이 교장이 폐교 위기를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며 고안한 게 오케스트라다. 강릉시교향악단의 창단 멤버였던 권 교장이 악기를 구입하고 강사진을 초빙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게 출발이었다. 한예종에서 보낸 강사진과 별개로 부부 강사가 상주하면서 아이를 가르친다고 했다. 2012년에는 계촌중학교에도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져 별빛오케스트라에 합류했다. 계촌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등 외지에서 전학을 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그는 “계촌초교는 방림면 내 ‘리’ 단위 초등학교로는 유일하게 폐교를 면했고 면 소재 초등학교보다 학생 수가 많다”며 “클래식 마을로 바뀌지 않았다면 학교는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축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이 완전히 달라지고 지역민의 자부심도 커졌다”며 “공원을 비롯한 클래식 관련 인프라가 차츰 들어서고 시골 마을인데도 마을과 학교를 둘러보려는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져 카페와 가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계촌마을은 외지인 유입으로 강원도에서 인구수가 늘어나는 몇 안 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전학 온 학생 외에도 은퇴해서 귀농·귀촌한 중장년층도 더러 있다고 한다.



계촌 마을 가로등에 설치된 스피커와 클래식 조형물.


지금의 축제에 이르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철에 웬 축제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이왕이면 클래식 대신 트로트 축제를 하자’ ‘클래식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트로트까지 넣자’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클래식만 해야지 차별성이 없으면 이도 저도 안 된다고 설득했다”며 “이제는 부탁하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축제 때 쓰레기봉투를 들고 청소하러 나선다”고 웃었다.

그가 요즘 고심하는 건 클래식 축제를 지역 경제 활성화와 접목하는 일이다. “이미 몇몇 농가들이 클래식을 브랜드화하고 있어요. 배추밭에 스피커를 설치해 클래식을 트는 농가도 있지요. 젖소 축사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데 생산량이 많다고 합니다. 농산물 포장에 ‘클래식을 듣고 자란 농산물’이라는 문구를 넣고 있습니다.”

계촌에 올해 5일장이 20여 년 만에 부활했다고 한다. 그는 계촌민속5일장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축제 때 젊은 팬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는 것에 희망을 느낍니다. 아직까지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가 없었는데, 누가 알아요. 계촌을 좋게 본 젊은 부부가 이곳에 정착하고 아이도 낳고 할지요.” 글·사진(평창)=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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