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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실적주의에 변질된 혁신…요가복의 샤넬은 사라졌다"

■룰루레몬 스토리(칩 윌슨 지음, 예미 펴냄)

30대 전문직 女 타깃 '애슬레저룩' 선도한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의 '혁신과 성공·실패' 담은 회고록

급성장 이후 '단기 수익 추구' 경영진과 갈등 끝 퇴진

"이익만 좇을땐 차별성 말살…평범한 기업 전락" 역설





신간 ‘룰루레몬 스토리’는 ‘요가복계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의 회고록이다. 책 전반부가 요가 팬츠로 글로벌 애슬레저룩(운동복과 일상복을 겸할 수 있는 옷) 업계의 선구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면 후반부는 이사회나 경영진과의 갈등 끝에 영향력을 잃고 떠난 과정과 이후 복잡한 심정을 기록했다.

통상 대다수 벤처 사업가는 일상 속에서 찾아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기업 규모가 커지면 투자자나 전문경영인과의 갈등, 초기 기업문화 퇴색, 내부 커뮤니케이션 위기 등의 성장통을 거치기 마련이다. 책은 곳곳에 자화자찬과 변명, 새로운 룰루레몬 경영진에 대한 비난이 담겨있지만 윌슨의 성공담과 실패담은 기업인이나 예비 창업자들이 참고할만하다.

책은 윌슨이 1997년 16년간 경영하던 운동복 판매 회사 웨스트비치 스노보드를 정리한 일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서핑·스케이트·스노보드 옷을 팔아 세계 스노보드 의류 업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재무 상태가 엉망이었고 가족들 먹여 살리기도 빠듯했다. 결국 회사를 팔아 모든 부채를 해결한 뒤 3명의 동업자들이 100만 달러씩 나눠가졌다.

실업자가 된 윌슨은 1998년 요가 수업을 듣다가 수강생들이 땀에 젖고 헐렁한 면 소재의 봉제 옷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억만장자 반열에 올려놓은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는 땀을 빨리 흡수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기능성 요가복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스포츠 의류는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직에 종사하고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32세에 콘도 회원권을 가지고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며 패션에 민감한 전문직 여성’을 ‘슈퍼걸’이라고 이름 붙인 뒤 시장 타킷으로 정했다. “딱 한 명의 가상 여성을 염두에 두고 그를 위한 브랜드와 디자인을 만들기로 했다. 슈퍼걸은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고 그들이 바쁜 삶 속에서도 완벽하게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사업 실패 경험을 살려 기업 핵심 가치와 조직 문화도 새로 만들었다. 한번 구입한 고객은 다시 구매하고 싶은 품질, 운동선수들이 참여해 디자인한 상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는 성실성, 건강·가족·일 사이의 밸런스, 직원들의 성과에 걸맞은 보수 지급 등이었다. 단순한 의류 회사가 아니라 고객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 것이다.



룰루레몬 창업자인 칩 윌슨./사진제공=예미


이를 반영해 고객은 ‘게스트’, 매장 직원은 ‘에듀케이터(교육자)’, 지역 사회에 재능을 기부하는 운동선수는 ‘앰배서더(대사)’라고 부르면서 하나의 스포츠 의류 공동체로 만들었다. 특히 윌슨은 스타 스포츠 선수를 광고 모델로 기용해 경쟁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대형 업체와 달리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미적 감각과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결국 그는 캐나다 서부 해안의 작은 의류 회사 룰루레몬을 특유의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다.

하지만 윌슨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룰루레몬의 급성장과 함께 찾아왔다. 기업공개(IPO) 이후 사모펀드 투자가와 전문 경영인은 단기 이익을 늘리는 데만 골몰했다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사모펀드는 주가가 많이 올라야 투자금을 최대한 현금화할 수 있고 경영진도 성과 보수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지분 소유자로서 기업의 50년 뒤를 바라보는 윌슨과 충돌은 불가피했다. 더구나 윌슨은 스스로를 창의적인 혁신가로 평가하며 위대한 기업가로 남기를 원했다.

룰루레몬을 위기에 빠트렸던 ‘속이 비치는 요가 팬티’ 사태도 경영진의 단기 실적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다. 2013년 룰루레몬은 여성용 속옷이 너무 심하게 비친다는 비판이 일자 6,0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을 각오하고 리콜 조치를 발표해야 했다. 윌슨은 경영진이 재무제표만 신경 쓰다가 품질 문제를 불렀다고 비판한다. 윌슨은 이사진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다가 2015년부터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책은 회고록이라는 성격상 어떤 대목은 윌슨의 주장을 한번 걸러 들을 필요는 있다. 가령 2013년 윌슨의 이사회 의장직 퇴임을 불러왔던 블룸버그 인터뷰에 대해 언론의 악의적인 편집 탓으로만 돌린다. 윌슨은 당시 “룰루레몬 팬츠는 일부 여성들의 몸에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여성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고 기업 브랜드 이미지도 크게 실추됐다. 또 윌슨은 책에서 밥 스미스, 크리스틴 데이 등 역대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타성에 젖어 기업의 장기가치를 훼손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 회고록은 미국식 전문경영인 제도와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윌슨은 창의성 넘치던 혁신 기업이라도 경영진과 주주들이 1년 후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구태의연하고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지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른바 ‘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면 창의성이 사라져 다른 기업과 차별성 자체가 말살되면서 그럭저럭 좋은 기업으로는 남겠지만 위대한 기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윌슨은 안전 운행을 하려는 애플 이사회에 의해 한 때 고(故) 스티브 잡스조차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말한다. 책은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의 다음과 같은 명언으로 끝을 맺는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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