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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종전선언·법적 정전 동거 상태 우려…미군 철수론 확산될 것” [청론직설]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北·中·진보세력, 유엔사 해체와 연합훈련 중단 요구할 것

美대선서 트럼프 같은 인물 당선땐 주한미군 철수 1순위

盧정부 임기말 정상회담 합의, 北 천안함 도발로 이어져

文, 종전선언 무리수 두면 차기 정부 대북정책에 큰 족쇄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게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도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 밀어붙이기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문재인 정부가 대선을 3개월 보름 앞두고 종전 선언과 남북정상회담에 매달리고 있다. 마치 노무현 정부가 지난 2007년 12월 대선 직전에 10·4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연상시킨다. 임기 말의 ‘대못 박기’가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2일 “지금 종전 선언을 하면 정치적인 종전(終戰)과 법적인 정전(停戰)이 동거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같은 인물이 차기 대선에서 당선돼 미군 철수를 추진한다면 주한미군이 가장 먼저 거론될 것”이라며 “종전 선언은 평화협정에서 따로 떼어내지 말고 비핵화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인데도 종전 선언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임기 종료를 4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엄청난 규모의 경제 협력 사업에 합의했다. 합의문을 보면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개성공단 2단계 개발,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관광용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등 대규모였다. 그 다음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듯이 하다 이행하지 않자 결국 북한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길래 문제가 됐는가.

△참여정부와 북한이 여러 사업에 합의했지만 남북 간에는 북핵 등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이들을 논의하자고 하자 북한은 남북정상 합의 사항부터 실행하라고 반응했다. 결국 남북 관계가 상당 기간 동결되다가 북한의 도발로 이어졌다. 참여정부가 대선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한 게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종전 선언만 하면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에 큰 제약을 초래할 것이다.

-최근 한미일 외교차관이 종전 선언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이 종전 선언 문안에 대해 미국과 협의 중이지만 완전히 조율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가 문안에 합의하더라도 북측에 제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북한이 이를 거부해버리면 종전 선언 카드는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종전 선언과 관련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정부는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어서 정전 체제, 법적·제도적 체제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최 차관의 얘기는 이와 완전히 반대된다. 겉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영향을 미치게 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종전 선언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동맹국인 한국의 정상이 종전 선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측 인사들의 얘기가 맞다면 한미가 문안에서 어느 정도 근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얘기했듯이 시기·순서·조건 등에서 한미 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시기 측면에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한이 완전히 태도를 바꿔 핵·미사일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는데 전쟁이 종식됐다고 선언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순서 측면에서는 한국은 종전 선언을 아무 대가 없이 비핵화를 위한 마중물로 삼아 그냥 미리 주자고 하는데 미국은 대가 없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뒤 종전 선언, 제재 해제, 비핵화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논의하자는 것이다. 조건과 관련해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같은 큰 그림 안에서 북한의 조치에 상응해 종전 선언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종전 선언과 관련해 비핵화, 북한의 미사일 위협 문제 등도 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남북미중 등 관련국들이 종전 선언에 참여할 경우 어떠한 파장이 예상되는가.

△종전을 선언하면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인 종전, ‘전쟁이 중단돼 있다’는 법적인 정전이 동거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원래 종전 선언은 전쟁이 끝난 후 당사국들이 맺는 평화협정의 1조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을 분리해낸 것이다. 정부는 정전 체제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 국내 진보 세력들이 당장 온갖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전쟁이 종식됐는데 왜 한미연합훈련을 하고 미군을 주둔시켜야 하나” “종전이 됐으니 유엔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 “전쟁이 없다고 선언한 마당에 왜 핵우산이 필요하느냐” 등의 주장들을 쏟아낼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계속 제기되면 한미 동맹만 약화할 것이다.

-베트남·아프가니스탄 등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 이후 전쟁이 재발해 패배한 사례들이 많다.

△종전 선언이 이뤄지고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는 인식이 퍼지면 미국 내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3년 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당선돼 전 세계적인 미군 철수를 추진한다면 종전 선언을 한 한국을 가장 먼저 거론할 것이다. 종전 선언을 따로 떼어내 미리 할 게 아니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를 같이 다루면서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협정으로 마무리 짓는 게 바람직하다.



-평화협정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제인가.

△6자 회담 때도 비핵화와 별도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방안을 논의하게 돼 있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은 같이 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평화 체제를 논의하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나올 것이라고 판단해 비핵화 문제만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는 둘 다 논의하자고 하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대북 제재를 해제하되 핵무기를 다 내놓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미 동맹은 지속될 수 있는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미 양국 간의 문제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1990년대 남북미중의 4자 회담이 벌어졌을 때도 어느 단계에 이르니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평화협정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주장의 범주 안에도 주한미군 철수, 주한미군의 전략 자산, 핵우산 같은 게 다 들어 있다.

-미리 종전 선언만 했다가 한미 동맹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인가.

△종전 선언을 평화협정에서 분리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다. 만약 종전 선언 카드를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연계시킬 수만 있다면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종전 선언 카드를 쓰는 것은 낭비다.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성형주기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반을 평가한다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 원인은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를 분리해 비핵화를 미국에게 완전히 떼어 준 데 있다. 핵 문제는 미국이 해결할 일이고 우리는 남북 관계만 개선하면 된다고 접근하다 보니 북미 회담이 결렬된 후 우리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비핵화도 전혀 진전이 없고 남북 관계도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뒤늦게 종전 선언 카드로 대북 정책의 유산을 남겨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무리수만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중심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 외교부가 너무 위축됐다. 복잡다단한 외교 정책의 중심 역할을 외교부에 맡기고 그 조직을 경제·안보를 분리하지 않는 세계 흐름에 맞춰 정비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지난 30년 동안 한미 양국에 여러 정부가 들어서서 수많은 북핵 문제 해법들을 내놓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방안은 없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옵션들을 꺼내 잘 배합해서 쓸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가 추진할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비핵화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대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비핵화에 응하지 않고 계속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하는 데 대비해 한국의 억지력, 한미 연합 방위 능력을 계속 향상시키는 것이다. 한국이 북핵 문제의 중재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직접적이고 중요한 당사자라는 입장에서 로드맵을 마련해 미국과 중국·러시아에 제시하면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 제기가 남북 대화와 비핵화 문제 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이 문제를 외면해왔다. 우리 정부가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북한도 국제사회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게 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결국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나.

△미중 경쟁 구도가 상당 기간 지속돼 새로운 정상적인 상태, 즉 뉴노멀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때만 해도 미국 혼자 중국을 상대해 한국으로서는 좀 편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 파트너와 연합해 중국을 상대하려고 한다. 미중의 중간에서 줄타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을 외교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또 세계가 과학기술 전쟁, 4차 산업혁명, 공급망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익 극대화가 중요하다. 한미 관계를 더 포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동맹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중국과는 서로 존중하면서 호혜적 관계로 정립해나가야 한다. 떳떳하게 원칙과 가치에 맞는 외교를 한다면 어떠한 보복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He is…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용산고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부에서 북미2과장, 한미안보협력관, 벨기에대사관 공사참사관, 평화외교기획단장 등을 지냈다. 이어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으로 중용됐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외교부 차관보를 거쳐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급)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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