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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대선에 소환된 ‘백래시’

임석훈 논설위원

대선 후보, 2030 구애 공약 쏟아내

'이대남' 환심 사려 젠더 갈등 이용도

삶 나아질 것 희망주는 정책은 없어

일자리 대책 등 실질적 대안 제시해야





‘백래시(Backlash)’는 기존의 사회·정치적 질서가 변화하는 데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뜻하는 용어다. 페미니즘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지난 199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펴낸 ‘백래시, 미국 여성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전쟁’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는 말로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급격하게 진행됐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항해 198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신보수주의 물결과 함께 확산됐던 반페미니즘 역풍을 백래시로 명명했다.

본격화한 대선 정국에 ‘백래시’가 소환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이 후보는 “한 번 함께 읽어보시지요”라며 ‘홍카탄(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캠프 2030 자원봉사단)이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한 커뮤니티 게시 글을 공유했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이 후보가 페미니즘을 멈춘다고 약속해달라. 그러면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을 비판하면 여성 혐오자가 되고 백래시가 되고 이게 군사정권 시절 빨갱이 프레임이랑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주장했다.

공유 글이 논란이 일자 이 후보는 “청년들의 절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2030 남성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로 글을 링크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전 여성가족부 명칭을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 ‘청년 기본대출, 청년 기본소득’ 등도 마찬가지다.



2030 남성을 향한 구애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관련 업무와 예산을 재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가부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는 ‘이대남(20대 남성)’의 표심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자치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를 현행 만 25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대선 전이 달아오를수록 최대 유권자층인 2030의 표심을 잡기 위한 여야의 공약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10월 말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 2030세대(18~19세 포함) 비중은 32.7%에 달한다. 60대 이상(29.3%)보다 많다.

2030세대의 좌절과 분노는 취업난과 집값 폭등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그동안 청년층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 특히 국정 운영의 책임이 있는 청와대와 여당은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거나 몇몇 청년 정치인을 청와대와 여당에 깜짝 발탁하는 식으로 젊은 세대의 분노를 무마하려 했을 뿐이다. 선거가 닥치자 다시 청년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척하고 있다. 하지만 사탕발림만 난무한 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비전과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불안과 절망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려 한다. 정치권이 청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분열의 정치, 갈등의 정치를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2030 목소리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진정 마음을 얻고 싶다면 청년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일자리·집값 대책 등을 제시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환심을 사려 하거나 남녀 대결을 부추기는 ‘편 가르기’ 프레임은 청년들을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정치는 프레임을 넘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그 중심을 잡아야 할 때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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