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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부활시키고···'보통 사람' 잠들다

■ 노태우 前 대통령 별세

12·12 쿠데타·비자금 등으로 굴곡진 삶…북방외교선 큰 성과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직선제 부활로 당선된 대통령으로 ‘보통사람’은 그를 상징한다. 다만 군사 쿠데타의 주동 세력이라는 수식어와 시대 변화를 읽고 북방 외교를 실행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12·12 군사 쿠데타(1979년), 6·29선언(1987년), 3당 합당(1990년), 비자금 사건(1995년) 등 현대 정치사의 여러 장면을 장식해왔다.

1932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4공화국에서 육사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한 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며 한국 정치사에 등장했다. 대통령 7년 단임 막바지에서 전두환 5공 정권은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주장한다.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자 육사 11기 동기였던 노 전 대통령을 통해 1987년 6월 이른바 6·29선언을 내놓았다. 군부 세력이지만 온건파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16일 16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직접선거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야권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로 분열된 상황에서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대선 기간에는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말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3당 합당까지 했지만 집권 기간 ‘물태우’로 불리며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에 시달렸다. 하지만 북방 외교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탈냉전 시기와 맞물려 남북 대화의 물꼬도 열었다. 7·7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이어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돼 이후 남북 관계의 틀이 구축됐다. 88 서울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퇴임 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이 선고됐다.1997년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된 뒤 2013년 9월 추징금을 완납했다. 아들 노재헌 씨가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적극적인 사죄의 뜻을 표하는 등 전 전 대통령과는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가장 시행을 제한할 수 있는 사유로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은 명시돼 있지 않다"며 "법률상 국가장이 가능하지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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