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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타 면제 확대로는 균형발전 못 이룬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4대강 예타 면제 비판한 민주당

명분만 바꾼 채 세금 낭비 부추겨

소프트웨어 중심 발전 전략 세워

'서울 쏠림' 근본 원인부터 해결을





문재인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상향할 것이라는 발표를 접했다. 지난 1999년 도입된 이래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을 넘는 사업에 적용해왔다. 이를 각각 1,000억 원과 500억 원으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특단의 지역 균형 발전을 모색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예타 면제 확대로 과연 균형 발전이 가능해질까.

오랜 기간 국책 사업은 유력 정치인과 소수 관료에 의해 독점적으로 진행됐다. 해당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나 평가는 아예 없거나 요식행위에 그쳤다. 이를 뒤집은 정책 혁신이 바로 예타 사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 산파역이다. 과거 KDI에 몸담았던 필자 역시 당시 예타 사업의 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객관적인 근거와 기준 없이 평가할 수 없기에 예타 매뉴얼 작성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KDI 펠로들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각오로 수백 쪽에 달하는 예타 지침서를 만들었다. 이 기준에 따라 각종 사업의 경제성 여부를 평가하는 과업을 진행했다. 무분별하게 추진됐던 개발 사업들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예타 적용 초창기 10개 사업 중 4개가 평가에서 탈락할 정도로 예타 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국민 세금 아껴 쓰라”는 대명제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평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연구자에게 모진 압박을 가하는 정치인과 관료를 견뎌가며 이뤄낸 성과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예타 제도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경제성 평가에 더해 지역 균형 발전, 지역 낙후도 평가, 환경 및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기준을 접목한 정책성 평가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정치권은 급기야 ‘예타 면제’ 카드를 들고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예타 면제를 통해 사업을 추진한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당시 4대강 사업을 앞장서 비판했던 현재의 민주당 정권이 보란 듯이 예타 면제를 밀어붙인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재해 예방을 명분으로 삼았던 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내건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현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과 연계한 공항과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위해 24조 원 규모의 예타 사업 면제를 이미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노골적이다. 아예 소요 예산을 기준으로 예타 면제 대상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1,000억 원 이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결정이 균형 발전과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얼마나 유용할지 의심스럽다.

지방 소멸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인구와 경제 지형은 왜곡돼 있다. 2040년대 초가 되면 수도권 대학 입학 정원만으로 전국의 모든 입시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역 대학은 모두 고사한다는 말이다. 전국의 모든 인재와 자원이 서울로 향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메가시티를 만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세심히 따지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도 지역 균형 발전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제는 하드웨어 일변도의 균형 발전 전략에서 탈피해 청년과 기업이 모여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한 지역 발전 정책을 추진할 때다. 정권 5년 차에 예타 면제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효과가 불투명한 개발 사업에 올인하는 모습에서 지역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의 꼼수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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