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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해외칼럼] 대도시는 시궁창인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부패한 대도시 vs 건강한 소도시

공화당 '억지 프레임' 방역 악영향

큰정부 덕보면서 탓하는 모순 초래

잘못된 확신에서 그만 벗어나야

폴 크루그먼




‘힐빌리 엘러지’의 저자이자 트럼프주의자로 오하이오주의 연방 상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J D 밴스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역겹고 폭력적인 도시’로 소문난 뉴욕을 이번 주말에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으로 현재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가 자신이 들은 뉴욕에 관한 평가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밴스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자신의 키를 맞추려 든다.

수많은 미국인이 아직도 주요 도시를 범죄와 부패의 온상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의 대도시보다 내륙 지역의 소도시가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숱한 사회 지표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출마한 많은 정치인들이 부패한 도시와 건강한 소도시를 대조하고 싶어하는 건 왜일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전반적인 범죄 발생 추이와 달리 살인 사건은 전국적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뉴욕은 10년 전보다 안전하다. 30년 전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보다 뉴욕이 훨씬 안전하다. 굳이 위기에 처한 지역을 골라내고 싶다면 뉴욕을 택해서는 안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지역은 ‘내륙 동부’에 몰려 있다. 루이지애나를 기점 삼아 미시간까지 반원을 그릴 때 그 안에 포함되는 도시들이다. 이들 지역에는 적정 근로 연령대에 속한 남성 미취업자들의 수가 유난히 많을 뿐 아니라 실직, 알코올, 자살과 마약 등으로 끝내 죽음에 이르는 이른바 ‘절망사’의 비율이 대단히 높다.

내륙 동부 지역의 사회적 퇴보는 경제적 뿌리를 갖고 있다. 지식 기반 경제의 부상은 교육 수준이 높은 고급 인력 밀집지인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부와 일자리를 몰아준 반면 미국 내륙 지방에 위치한 소도시는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고립됐다. 이 같은 기회 손실은 반세기 전 일자리 실종이 도심의 동공화를 불러온 것처럼 내륙에 위치한 소도시들의 사회적 해체를 초래했다.

밴스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자칭 ‘포퓰리스트’는 현재 내륙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와 다른 시기에 미국인들이 겪었던 문제 사이의 유사점에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암울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제안도 내놓지 않는다.

타락한 거대 도시와 선량한 소도시라는 말도 안 되는 대조는 해당 정당의 정책에 파괴적이며 때로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부실 대응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를 대도시에 국한된 블루 스테이트의 문제로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인구 밀집 지역에서 기승을 부린다는 주장이 당시에는 거의 정설로 자리를 잡았다. 팬데믹이 대도시와 블루 스테이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일부 매체의 발표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코로나19가 팬데믹 초반 뉴욕을 강타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도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인구 밀도는 팬데믹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사우스다코타주는 샌프란시스코와 주민 수가 비슷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네 배나 많다. 현재 농촌 지역과 공화당 우세 주의 백신 접종률은 블루 스테이트에 비해 현저히 낮다. 새로운 감염 사태가 일어날 경우 대도시가 코로나 감염의 온상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진보 색채가 강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인 캘리포니아가 인구 유출로 몸살을 앓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뉴욕만큼 살 곳이 못 된다는 주장은 필시 우파의 입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농촌 지역은 미덕으로, 도시는 악으로 가득 찼다는 허구는 팬데믹 대응에 차질을 빚는 데 그치지 않았다. 많은 공화당 유권자들은 그들의 지지 정당이 간절히 없애기 원하는 ‘큰 정부’의 주된 수혜 대상에 자신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정부의 지출이 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믿는다.

레드 스테이트 유권자들은 연방 정부가 사회 연금과 의료보험 형태로 그들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 연방세보다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극단적인 예가 켄터키다. 켄터키 주민 1인당 연간 연방 보조금은 연방 정부에 내는 세금보다 무려 1만 4,000달러나 많다.

유권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안다면 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려는 공화당의 정책을 지지할까.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니만큼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마땅하다. 문제는 정치색이 다른 지역들을 폄하하고 “그들을 진정한 미국의 일부로 볼 수 없다”며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팬데믹 위기에서 숱한 인명을 앗아간 그 같은 냉소주의는 너무 쉽게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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