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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용] "해변에 웬 주사기?···바닷가 쓰레기로 작품 만드는 비치코밍

속초 해변 지키는 '그림쟁이 할머니' 김현아 작가 인터뷰


※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오늘은 속초에서 비치클린·비치코밍을 하고 계시는 김현아 작가님을 만났어요. 비치코밍은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를 재활용해 그림이나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뜻해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간간히 소식을 전해 듣다가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 만나게 됐어요. 김현아 작가님을 만난 건 비가 오락가락 내리다 햇빛이 '쨍'하게 비치던 6월 초 어느 날. 새벽에 서울을 떠나 속초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쯤, 약속 장소인 속초 등대해변에서 작가님을 만났습니다.(작가님 인스타그램은 여기)

작가님은 해변 청소를 위한 준비를 다 해오셨더라구요. 쓰레기 집게와 50리터 짜리 종량제 봉투는 기본. 그리고 줍기 힘든 플라스틱 조각과 스티로폼을 겨냥해 이날 처음 가져오셨다는 건더기 국자(두베국자)도 보여주시네요. 이에 질세라 에디터도 가방에서 플로깅용 목장갑을 꺼내 꼈어요. 작가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의욕 넘치게 해변 청소를 하기 시작했죠. 전 물론 쓰레기 봉투를 들고 작가님 뒤를 졸졸 따라다닌 게 대부분이긴 했지만요. 그땐 참 철이 없었죠. 해변 청소가 쉬운 줄만 알았으니까요.

의욕 넘치게 해변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담배꽁초, 특히 버려진 필터가 무지 많았어요. 먹다 남은 맥주캔도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어요.


작가님과는 청소를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작가님은 속초에 내려오신 지 올해로 5년이 되셨대요. 넓은 등대 해변을 청소하실 생각을 어떻게 하셨냐니 해변을 걷다가 쓰레기를 주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셨다고. 해변 청소를 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도 묻는대요. "속초사람도 아니면서 왜 해?"라고. 그럴 때 마다 마음 속으로는 '속초 사람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해요. 약간 섭섭하신 듯. "그냥 하는 거예요"라고 답하면 또 묻는대요. "(대가도 없는데)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작가님은 대가는 "자기 만족"이라고 하셨어요.

한 시간 남짓 청소를 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쓰레기를 볼 수가 있었어요. 먹다 남은 맥주캔은 없는 날이 없구요. 그냥 버리면 재활용이 안되니까 캔 안의 내용물을 버리고 발로 밟아서 구긴 다음 쓰레기통에다 담아야 해요. 쓰레기 중에 담배꽁초가 제일 많대요. 한 번은 담배꽁초만 주워봤는데 페트병 한가득 채워졌대요. 700개가 훌쩍 넘었다고. 폭죽 쓰레기도 엄청나요. (해변에 놀러오는 분들, 밤이 되면 폭죽 놀이 하시죠? 아름다운 해변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일 수도 있어요.) 다행히 이날은 폭죽이 안보이긴 했어요. 하지만 보통 아침에 청소하러 나오면 폭죽 쓰레기가 모래밭에 창처럼 일렬로 쭈~욱 꽂혀 있대요. 반쯤 타버린 폭죽대와 폭죽이 터지면서 생기는 잔해는 모래밭 넓게 멀리 퍼져나가게 돼요. 전부 플라스틱이에요. 보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도 엄청 많이 뿌려지겠죠.

오컬트의 현장...?악마 소환...??! 간밤에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았네요. "해변에서 저런 나무 조각을 구하기도 힘들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낚시 도구나 그물, 밧줄 등 어구도 해변으로 많이 떠밀려 온다고 해요. 고깃배들이 바다에서 버린 쓰레기일테죠. 그냥 바닷속에 가라앉아 썩어 없어질 해초들도 그물과 엉키면 해변까지 밀려와요. 특히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밧줄이나 그물들이 엄청 많이 떠내려 온대요. 이날에는 갈고리 모양의 낚시 바늘도 발견됐어요. 이날도 해변에서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던데 바늘에 찔리기라도 하면…물티슈는 정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푸념하셨어요. 없으면 무지 불편할 테지만, 적어도 제대로 버려줬으면 한다고.

저런 낚시 바늘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요. 해변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 많은데 너무 위험한 듯. 청소를 하다 보면 그물이나 밧줄, 낚시 바늘 등 어구가 적지 않게 발견돼요.


작가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쓰레기는 주사기래요. 대체 주사기가 왜 해변에 있을까요? "어선들이 바다에 나가면 병원이 없으니 대부분 배에 약품을 싣고 간대요.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봐요."라고 답하시네요. 청소를 끝낸 뒤 현아 작가님 작업실에 가서 못다한 얘기를 나눴는데 그 때 지금껏 모아놓은 주사기를 보여주셨어요. 70개가 훌쩍 넘는다고 해요. 바늘이 그대로 살아있는 주사기도 있고. 누군가 해변을 청소하지 않으면 모래밭 곳곳에 지뢰처럼 주삿바늘이 우리의 발을 노릴지도 몰라요. "해변 청소할 때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해요. 그래도 청소를 하다보면 너무 꼴보기 싫을 때도 있어요." 작가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날 때도 많으시대요.저도 이날 작가님을 따라다니면서 '깊은 빡침'을 여러 번 경험했답니다.

의욕 넘치게 시작한 해변 청소인데 1시간이 넘어서자 에디터의 말수가 급속히 줄었어요. 땀도 폭우처럼 쏟아지고. 모래 속으로 신발은 푹푹 들어가니 걷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특히 방파제 아래 모래에 파묻힌 커다란 자루(마대)를 힘을 써서 뽑아내려고 하다가 체력도 방전됐어요. 물론 자루를 파내는 데는 실패. 하아...방전된 에디터를 생각해 주셨는지 그만 작업실로 가자고 하셨어요. 그래도 한 시간 남짓 길지 않는 시간 50리터 종량제 봉투 가득 쓰레기를 채울 수 있었어요.



한 시간 남짓 청소를 했는데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차 버렸어요.


작가님 작업실은 해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있었어요. 작업실에 도착한 뒤 작가님의 비치코밍 작품 얘기도 더 들을 수가 있었고 가치관 같은 좀 깊고 어려운 얘기도 나눌 수가 있었죠.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계시더라구요. 원래 작가님은 명품 보석 브랜드 기업에서 일을 하셨는데, 10년 넘게 일하다가 '현타'가 왔대요. 연봉도 충분히 높았고 전공을 살린 직업도 괜찮았고. 그런데 많이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살아도 되니까 카페에서 그림 그리는 정도만 벌면 되니까", 이런 생각으로 속초(동생분이 원래 속초에 계셨대요)로 내려오셨어요.

작가님이 비치코밍 작품을 보여주셨어요. 캔버스에 일러스트를 하고 아래 부분에 해변에서 주워온 쓰레기를 붙였어요. 폭죽 잔해도 보이고, 유리 조각도 있고, 어패류 껍질도 있어요. 본드로 붙이면 '안'친환경적이니 정성스럽게 실로 묶으셨다고 하네요.


여유로운 삶을 누리시겠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도시에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 에디터보다 더 바쁜 듯 했어요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계속 그려 올렸더니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그분들을 가르치니 이제는 학교 동아리 미술학교나 방과후 학교 시간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요즘에는 정기적으로 오후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대요. 오전엔 해변 청소를 하고, 저녁에는 주짓수랑 요가를 한 뒤 작업실에 돌아와 그림을 그린대요. 주말엔 미술 강습을 하신대요.

비치코밍 작품 얘기도 많이 나눴답니다. 처음에는 해변에서 청소한 뒤 주운 쓰레기로 앉은 자리에서 형상화해서 사진을 남기는 정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다 단발성이 아닌 작품을 오래 남기기 위해서 재료로 쓰이는 쓰레기를 따로 모아 집에 가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요. 작가님이 모아놓은 쓰레기 재료도 엄청 났어요. 주사기는 물론, 낚시용품, 플라스틱 뚜껑, 조개 껍질, 폭죽 잔해 등등.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는데. 정말 느낌 있었어요. 작가님 작품 일부를 사진에 담아왔으니 한 번 보실래요?

어패류나 도자기 조각에 그린 그림들. 느낌있죠?


작가님은 참 주관과 계획이 뚜렷하신 분이라는 인상이었어요. 스스로를 "호전적"이라고 평가하실 만큼 추진력이 엄청나시더라구요. 조만간 작업실을 꾸며야 하는데 속초에는 제로웨이스트샵이 없어서 작업실 한쪽 공간을 제로웨이스트샵으로 꾸미고 싶으시대요. 속초 첫 제로웨이스트샵에는 생계가 어려우신 어르신을 고용해 운영하고 싶다고 했어요. 또 작업실은 지역 예술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도 했어요. 적자가 나면 안되니까 운영도 잘하고 싶고. 속초 해변 청소 활동도 계속 하실 거래요. 에디터가 찾아간 날이 82번째 비치클린이었는데 최근 작가님 인스타를 눈팅해보니 그새 서너 번을 더 나가셨더라구요.

비치클린 50회 때는 그동안 성실하게 했다면서 친환경 브랜드인 프라이탁 가방을 자신에게 선물했대요. 100회, 150회, 200회를 거칠 때마다 선물을 하고 싶은데 아직 100회 선물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제 슬슬 고민해보겠다고. 작가님은 결국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도 했어요. 서울에 살 때에는 청량리 복지센터에서 대가 없이 한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술 강습을 했는데 속초에서도 꼭 하고 싶대요. 그리고 작가님의 작은 목표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거라고 했어요.

"'현아 작가가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하나만 보고 시간을 내고. 그게 어떤 일인지는 그 후에 묻더라도 말이죠."

해변에서 주워 온 주사기들이에요. 바늘이 그대로 꽂혀 있는 주사기도 있어요. 위험하겠죠? 지금까지 모은 주사기가 70개가 훌쩍 넘는대요.


작가님과 만나면서 퍽퍽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늘 걱정거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 에디터도 많은 걸 느꼈어요. 너무 욕심내며 사는 건 아닌지. 누군가의 의도와 속내를 파악하고자 하면서 늘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또 아닌지. 뭐 이런 생각들이요.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내려놓고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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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전략·콘텐츠부 팀지구용 기자 use4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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