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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쿠팡화재 최초 목격 직원 "불났다 알렸지만···양치기 소년 취급하며 웃었다" (종합)

"휴대폰 반입 못해 보안관계자에 알렸지만 묵살당해

화재경보·스프링클러 등 오작동 잦았지만 개선 안돼"

"차라리 내가 휴대전화 찾아 신고했더라면…" 자책도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20일 오전 폭격을 맞은 듯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목숨을 앗아간 쿠팡의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최초로 목격한 직원이 당시 여러 차례 화재 사실을 내부에 알렸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17일 덕평물류센터에서 근무 중이었던 A씨는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덕평쿠팡물류센터 화재는 처음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같이 주장했다.

연기를 최초로 목격한 쿠팡 직원 A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A씨는 소방서에 최초 신고가 접수됐던 오전 5시 36분보다 10분 전인 5시 26분경 1층 심야조 전체 인원의 퇴근을 체크하고 1층 입구로 향하던 중 1.5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아래에서 이미 가득 찬 연기와 어디선가 계속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미 5시 10~15분경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평소 화재 경보 오작동이 잦았던 터라 업무를 중단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경보 오작동이 아닌 실제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함께 퇴근하던 동료들은 화재 경보가 계속 이어지고 방화문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곧바로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고, A씨는 여전히 화재 발생 사실을 모르고 업무를 이어가는 다른 조 동료들에게 뛰어가 “진짜로 불이 났다. (화재 경보기) 오작동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17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쿠팡 물류센터 내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 곧바로 화재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서도, 이 때문에 무전기와 휴대전화를 소지한 보안요원에게 달려가 불이 났음을 알렸다고 했다. 그러나 보안요원은 “불난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까 퇴근이나 하시라. 화재가 발생했더라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대꾸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가 재차 “연기가 심하다. 뭐하러 장난치겠나. 연기가 심하다는데 확인도 안 하고 왜 자꾸 오작동이라 하는 거냐. 안에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남았으니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보안요원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A씨는 지하 2층의 또 다른 관계자를 찾아가 화재 상황을 알렸다. 해당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시 업무를 하는 직원으로,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어 곧바로 신고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크게 웃으며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 된다”며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A씨가 거듭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 사람 다치면 책임질 거냐”고 부탁했으나 보안 관계자는 웃기만 하면서 “수고하셨다. 퇴근하시라”며 이를 끝까지 묵살했다고 전했다.

20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동식 구조대장 빈소에 소방령 추서 임명장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청원글에서 A씨는 화재 당일인 지난 17일부터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52)이 숨진 채 발견된 지난 19일까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물류센터 관계자들을 믿고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하려던 그 시간에 차라리 휴대전화를 찾아 신고를 했더라면 대형 화재로 번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 자책했다.

지난 2018년 발생한 쿠팡 덕평물류센터 담뱃불 화재 증언글.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A씨는 “이런 심정에도 청원부터 드리려 하는 것은 덕평물류센터에서는 이미 3년 전에도 담뱃불로 인한 화재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당시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가득 찰 정도였는데 제대로 된 대피 안내방송이 없었던 일이 있었다며 “한 번 겪었는데도 개선된 것이 전혀 없어 이번에도 참사로 번지게 됐다.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소에도 정전이나 크고 작은 화재경보 오작동 외에도 작은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쿠팡 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프링클러도 오작동이 많다는 이유로 꺼놨으며, 이번 화재 당일에도 노동자들 스스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상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장은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 작동이 8분간 지체됐다”고 밝힌 바 있다.

A씨는 끝으로 “사고의 정확한 책임을 규명하고 관련 대상자들에 강력한 처벌을 내려달라”며 “이번만큼은 올바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이를 꼭 시행해 달라"고 했다. 이어 “안전불감증이 불러낸 사건사고들이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소방대장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의 청원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6,488명의 동의를 얻었다.

21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소방관과 함께 건물 구조 안전진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화재와 관련, 경찰도 불이 처음 난 시점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22일 이천경찰서 형사과와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등 25명으로 구성된 수사전담팀은 화재 직후 확보한 물류센터 지하 2층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고 있다.

이 CCTV에는 물품 창고 내 진열대 선반 위쪽 전선에서 불꽃이 이는 장면이 담겼다. 지하 2층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진열대 선반 위쪽으로 선풍기를 꽂기 위한 전선 여러 개가 지나는데, 이중 한 곳에서 불꽃이 발생했다. 이후 창고 밖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를 본 근무자가 최초 신고를 한 시간이 지난 17일 오전 5시 36분으로, 경찰은 CCTV에 불꽃이 이는 장면이 찍힌 정확한 시간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발생 시점을 확인한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쿠팡 측의 대피 지연 의혹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전선 불꽃이 이번 화재로 이어진 것인지를 비롯한 자세한 화재 경위와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현장 감식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날까지도 불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황이라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지난 2월 소방당국이 실시한 소방시설 점검에서 277건의 결함을 지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시설 등 종합정밀점검 실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점검에서 지적된 결함은 고정 지지대 탈락 등 스프링클러 관련이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방화셔터 불량도 26건 지적됐다. 앞서 소방당국은 “해당 물류센터는 올해 2월 22일 마지막으로 소방시설 점검을 받았으며, 당시 소화기 미부착 등 100여 건의 위반사항이 발견됐으나 현장 점검 이후 모두 시정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홍연우 인턴기자 yeonwo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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