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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해외칼럼] 보수주의 원칙보다 우선하는 '부족 충성심'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이념 아닌 분노·감정에 지배되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 중심 공화당

자기보존 급급한 정당으로 전락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리즈 체니 미국 하원의원을 사실상 파문한 공화당의 결정은 분수령적인 사건이다. 이는 공화당이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에서 아이디어보다 ‘부족 충성심(tribal loyalty)’을 우선하는 정당으로 완전히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체니 의원의 표결 기록을 그 대신 공화당 하원의원 총회 의장에 선출된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의 기록과 비교해보자. 의정 활동 과정 전반을 통해 체니가 던진 투표 기록을 검토한 미국보수연합(ACU)은 그의 일관된 보수적 성향을 78점으로 평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터파닉 의원의 점수는 44점으로 공화당 하원의원들 가운데 바닥권이었다.

체니 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안들을 일관되게 지지한 데 비해 스터파닉은 전임 대통령의 대표적 입법안인 지난 2017년도 감세안에 반대표를 던진 12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스터파닉은 2020년 대선이 사기극이라는 트럼프의 ‘완전한 거짓말’을 받아들이며 그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 알다시피 오늘날의 공화당은 보수주의 원칙보다 부족 충성심을 우선시한다.

이것은 대단한 변화다. 20세기 동안 공화당은 부유한 엘리트들이 주축이 된 컨트리클럽에서 생동감 넘치는 아이디어 정당으로 진화했다. 갈등은 1950년대에 시작됐다. 내셔널리뷰의 편집장인 윌리엄 루셔가 지적했듯 “미국의 현대적 보수주의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대한 극심한 반발을 통해 모양새를 갖췄다.” 보수의 아이콘인 배리 골드워터는 진보주의자들과의 절충점을 찾으려는 공화당을 향해 질책을 퍼부었다. 그는 1960년 상원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복지국가, 중앙집권 정부와 연방 규제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왔으면서도 이제 약간은 괜찮다고 말한다. 학교에 대한 연방 지원에 반대하지만 그 역시 약간은 괜찮다고 한다. 낙후 지역에 대한 연방 지원에 반대하면서 조금은 유사한 정책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인플레를 유발하고 실업률을 높일 것임을 알면서 약간의 임금 인상은 괜찮다고 말한다”고 일갈했다.

골드워터는 당을 장악한 강력한 보수 기반을 만들어냈지만 그가 내세운 자유시장 이념은 독성이 강해 그대로 시행하기 어려웠다. 보수주의자들은 뉴딜에 이어 ‘위대한 사회’의 폐기를 줄기차게 약속했지만 끝내 실천하지 못했다. 이것이 공화당의 역학이 됐다. 진보적 프로그램의 폐기 공약으로 지지 기반을 달궈놓지만 일단 집권하게 되면 대다수 미국인이 실제로 복지국가를 원한다는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필자의 동료인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디온 주니어는 이를 “배반의 정치”라고 부른다. 공화당이 비겁하게 보수주의 이념을 팔아넘긴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뉴트 깅그리치가 등장한다. 그는 아이디어 대신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을 결속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깅그리치는 당시 공화당의 원내대표로 ‘좋은 사람(Mr. Nice Guy)’으로 통하던 로버트 미첼 의원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깅그리치는 조지 H W 부시가 민주당과 야합해 증세를 단행했다고 공격했고 결국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다. 깅그리치는 암시와 과장·비방 등을 절묘하게 배합해 민주당 하원의장인 짐 라이트를 축출했다. 그는 한 세대에 걸쳐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새로운 정치 수사학을 가르쳤다. 핵심은 민주당을 묘사할 때 ‘구역질 나는’ ‘반역자’ ‘부패’ ‘이기주의’ 등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공화당은 ‘파이트 클럽’ 정당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핵심 아이디어에 대한 공화당의 의지는 닳기 시작했다. 당이 방대한 적자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재정보수주의에 충실하겠노라 약속하기는 힘들다.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은 다양한 방법으로 복지국가를 사실상 확대시켰다. 아버지 부시는 평생 온건파였고 아들 부시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를 이용하자는 이른바 ‘온정적 보수주의’를 입에 올렸다. 이라크전은 공화당의 국제주의라는 이념적 바탕을 훼손했다.

트럼프는 깅그리치가 떠난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는 행태를 중심으로 공화당을 재활성화했다. 트럼프는 중국인·멕시코인과 무슬림 등 외국인들과 진보적 엘리트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고 모든 무슬림을 외국인으로 채색했다. 트럼프는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자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자유시장 원칙을 위반했다. 그는 관세를 수용했고 대기업들에 공격을 가하면서 농업인 등 그에게 호의적인 선거구에 후한 지원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점차 뚜렷해지는 당의 인종적 기반을 이해했고 근로계층에 속한 백인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들쑤시는 정치적 수사에 집중했다.

체니는 보수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공화당을 재건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이미 여러 해 전에 패배로 끝났다. 지금의 공화당은 이념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자기보존에 급급한 부족주의 정당이다. 이런 정당은 분노와 감정에 의해 정의되고 지도자에 대한 부족주의적 충성심에 의해 조직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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