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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에세이를 쓰는 슬픔과 기쁨

작가

내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부딪히지만

아무런 액세서리도 걸치지 않은

온전한 나를 찾는 즐거움이 더 커

정여울 작가






글을 쓸 때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이 이야기를 쓴다면 관련된 사람들이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는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써도 뭔가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될까 하는 생각. 너무 많은 감정들이 얽혀 있는 이야기라 ‘지나치게 감정적이다’라는 평가를 들을까봐 두렵다는 생각. 이 모든 자기검열의 방어막이 글쓰기의 적이다. 관련자들은 이니셜 등의 다양한 장치를 통해 사생활을 보호하면 된다. 그리고 사소한 이야기조차 사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의 힘이다. 아무리 작은 스케일의 이야기라도 내 마음 전체를 사로잡고 있는 이야기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때는, 격렬한 감정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좋은 재료임을 잊지 말자.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소재야말로 글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어떤 뚜렷한 감정을 격하게 불러일으키는 소재야말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장애물을 다 뛰어넘고도, 가장 뛰어넘기 힘든 글쓰기의 벽이 있다. 바로 ‘내 안의 부끄러움’이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특히 에세이를 쓸 때 부딪히는 마음의 장벽이다. 소설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때조차도 일종의 객관적 거리를 둘 수 있다. ‘실제의 나’와 ‘소설 속의 나’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바로 ‘소설 속의 인물’과 ‘실제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잘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에게 꼭 필요한 균형감각이다. 하지만 에세이 작가는 그만큼의 거리를 두기 어렵다. 에세이의 매력은 진솔한 나 자신과의 만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세이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바로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진솔한 고백의 힘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에세이의 특징은 바로 작가를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에세이의 감동은 바로 ‘내가 온갖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순간’에 시작된다.



나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을 쓰며 에세이 작가로 거듭나는 힘겨운 통과의례를 단단히 치렀다. 나의 이야기를 쓸 때의 온갖 부끄러움과 머뭇거림, 망설임과 주저함을 속속들이 겪어본 것이다. 그때 나는 ‘에세이를 쓰는 슬픔’과 ‘에세이를 쓰는 기쁨’을 동시에 깨달았다. 나의 이야기를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내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상실감을 맛본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 가면도 액세서리도 걸치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더욱 컸다. 그렇게 ‘가면을 벗는 기쁨’이 가장 크게 느껴진 책이 바로 ‘마흔에 관하여’였다. 일단 내 나이를 강조하는 제목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 나이 마흔 무렵’이라는 시기 자체가 중요한 테마였기 때문에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굳이 독자들에게 내 나이를 강조하고 싶지는 않은 ‘가면의 자아’가 또 한 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책 제목을 ‘마흔에 관하여’라고 짓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나이에 대한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 고백함으로써 오히려 더 이상 고백할 것이 없어져 편안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글을 쓸 때 나를 다 던져버림으로써 또 한 번 새로 태어나는 느낌,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마흔에 관하여’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솔직한 글을 쓰는 ‘지금의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이 전환점을 지나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 때마다, 내 안에서 나를 일깨우는 더 강인하고 지혜로운 나의 모습이 있다. 바로 그건 ‘나를 던져야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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