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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83> 세금 2,400만원으로 연 수입 56만원 ‘탈빈곤 농민’ 만든 中共

■중국식 빈곤 전쟁의 明暗

국가 공무원은 어쨌든 늘어난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중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진핑의 ‘탈빈곤 선언’이 있던 지난달 25일 ‘국가향촌진흥국’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베이징에서 현판식을 가졌다. 탈빈된 농촌을 본격적으로 진흥시키는 임무를 갖고 인력과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는 중국 수뇌부들이 총동원돼 ‘전국 탈빈곤 총결 표창대회’가 열렸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한 시간 가량 이른바 ‘중요 연설’로 열변을 토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앞서 제시했던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과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위한 디딤돌인 탈빈곤(脫貧困) 사업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날 시진핑은 중국에서 더 이상 ‘빈곤’이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그는 “ 9,899만 농촌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났다”면서 “전국에서 832개 빈곤 현(縣)과 12만8,000만 촌(村)이 모두 빈곤 상태에서 빠져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2013년 자신이 집권한 이후 8년간의 치적인 셈이다. 시진핑은 오는 4일부터 시작되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중국 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들 9,899만명은 중국 14억명 인구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빈곤 인구라는 것이 중국측 주장이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차치하고 일단 중국이 ‘탈빈곤’의 근거라고 제시하는 것은 다음의 세 부문이다.

탈빈곤에 성공한 이들의 수입이 높아졌고 두 가지 걱정을 해소하고 세 가지 보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걱정’은 먹고 입는 문제다.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걱정을 가장 빈곤한 농민들에게서 없앴다는 말이다. 또 ‘세 가지 보장’은 의무교육, 기본의료, 주거안정을 말한다. 최근 중국 농촌 지역에 집단 주거시설이 대거 등장했다. 바로 오지의 농민들을 이주시켜 만든 새로운 이주지다. 결과적으로 빈곤 농민들에게 의식주에 더해 교육·의료까지 제공했다는 의미다.

탈빈곤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의 농민의 수입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탈빈곤 기준선은 2019년 말 현재 연간 농민의 순수입 3,218위안(약 56만원)이다. 여기서 농촌 순수입은 도시민의 가처분소득과 같은 개념이다. 빈곤 기준선은 지난 2011년 정해졌는데 당시 2,300위안이었다. 여기에 매년 물가상승률을 더해 계산해 3,000위안대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했을까. 빈곤해소 사업에 수많은 사람이 동원됐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가난했던 농민들의 노력도 당연히 컸을 것이다. 여기서는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투자비만 살펴보도록 하자.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지난달 25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탈빈곤 총결 표창대회’에서 농촌 탈빈곤 사업 공로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은 이날 연설에서 8년간의 탈빈곤 사업에 들어간 비용도 일일이 밝혔다. 세부적으로 우선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약 1조6,000억위안을 투입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담비율은 3대5 가량이었다. 또 도시와의 토지전용을 통한 자금도 약 4,400억위안이 들어갔다. 탈빈곤 지원 소액 신용대출이 약 7,100억위안, 탈빈곤 재대출이 6,688억위안, 탈빈곤 맞춤 금융대출이 9조2,000억위안, 동부 연해 8개성의 협력지원 자금이 약 1,005억위안, 알리바바·징둥 등 기업의 투자액이 약 1조위안 등이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3조7,200억위안(약 2,381조원) 가량이 된다. 금융대출이 상당히 있는데 사실상 되돌려 받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세금으로 메꿔야 하는 비용이다. 매년 1조7,000억위안 가량이 투입돼 1,000만명씩의 빈곤을 없앴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보면 56만원을 벌게 해주는 1인당 탈빈곤 사업에 2,400만원 가량이 사용된 셈이다.

중국 농촌 조직에는 탈빈곤 사업만을 담당하는 ‘제1서기’라는 직책이 있다. 지역 우두머리인 서기의 바로 아래 직책이다. 시진핑의 연설에서 “300만명의 제1서기와 촌 간부들이 일선에서 일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관료 자리가 마련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빈곤 문제를 돈만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아주 박한 ‘가성비’인 셈이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 탈빈곤 총결 표창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그래도 시진핑의 선언처럼 “중화민족 수천년 역사에 존재하던 빈곤문제에 있어서의 역사적 성취”라고 한다면 자랑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같은 중화권인 대만과 홍콩, 마카오의 탈빈곤 성공 사례와 비교하면 한참 늦고 또 지지부진하다. 1인당 국민소득을 볼 때 중국은 지난해 겨우 1만504달러였지만 대만은 이의 세배에 가까운 2만8,383달러다. 중국은 늘상 대만이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경제 수준에서는 한참 떨어진다.

중국의 탈빈곤이 늦어진 이유는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국공내전까지 끝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됐을 때 중국인 거의 대부분은 빈곤했다. 이는 한국이나 대만 등 과거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의 공통된 상황이었다. 다만 다른 나라들은 재빠른 경제발전을 통해 1970~1980년대에 탈빈곤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달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후 이른바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까지 허송세월을 보냈다. 권력투쟁과 사회주의 집단화 실험을 하면서 제자리걸음만 한 셈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도시보다 발전이 늦는 농촌에서 더 심했다. 문혁 마지막 해인 1976년 상황이 중국 공산당이 처음 창당한 1921년보다 더 나빴다는 평가도 있다. 올해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라고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앞부분 50년 이상은 업적 실행에서 빼야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 중부의 농촌지역인 안후이성의 1980년 1인당 GDP는 291위안(약 5만5,000원)에 불과했다. 당시 전체 29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27위였다. 중국은 1950년대부터 인민공사 제도를 통해 토지와 설비를 집단화하고 공동경작, 공동배분을 실시했다. 이 결과 노동생산 효율성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는 극심한 빈곤으로 귀결됐다.

그나마 중국 농촌이 변화한 것은 1978년 이른바 ‘개혁개방’의 영향이다. 농촌에서의 결정적인 계기는 1978년 12월에 있었다. 가장 후진적이었던 안후이성 펑양현 샤오강촌에서 기존의 인민공사식 공동생산 분배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는 호별영농제가 도입됐다. 이것이 펑양현과 안후이성을 거쳐 중국 전체로 확산되면서 농업생산이 급증하고 개혁개방의 성과가 농촌에도 안착했다. 안후이성에서 농촌개혁이 시작된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이 가난해 어떠한 제도를 택하더라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심한 빈곤은 사회주의 보수파의 막무가내식 반대를 이겨내는 배수진이 됐다.

오른쪽 사진은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바이스시에서 탈빈곤 활동을 진행하다 사고로 사망한 고 황원슈 바이스시 러예현 신화진 바이니촌 촌민위원회 제1서기의 생전 모습이다. 왼쪽은 지난달 25일 ‘전국 탈빈곤 총결 표창대회’에서 시상후 눈물을 훔치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황중제다. 고 황원슈는 중국 탈빈곤 사업의 상징이 됐다. /신화연합뉴스


다만 사회주의 소유체제의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농촌을 지향하는 중국에서는 농촌의 토지소유 제도가 지금도 1978년 개혁에 멈춰 있다. 개인은 여전히 ‘소작인’에 그치고 있다.

중국은 토지의 사적 소유제를 인정하지 않고 이른바 공유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도시와 농촌에 따른 지역 차는 공유제의 성격을 달리 만들었다. 즉 도시 토지는 국가소유이고 농촌의 토지는 과거 인민공사 제도를 계승한 농촌집체(집단) 소유다.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10조에는 “도시의 토지는 국가소유(國家所有)다. 농촌 및 도시교외의 토지는 법률에 규정돼 있는 국가소유 이외에는 집체소유(集體所有)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우선 여기서 ‘집체소유’라는 말이 애매하다. 중화인민공화국 민법전에 따르면 ‘집체’라는 것은 농촌집체경제조직 또는 촌민위원회를 의미한다. 농촌집체경제조직은 과거 인민공사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현재의 향(鄕)·진(鎭) 정부와 기업을 의미하게 됐다.

‘집체’ 간에도 논란은 있다. 그나마 농촌토지 소유가 한 집체에 의해 이뤄질 경우 소유권이 명확하지만 둘 이상이 공동소유하는 경우 상호간의 권한 설정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단지 건설을 위해 농촌 토지가 수용될 경우 이의 허가문제로 다른 집체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농민이 의사와도 반대로 갈 수 있는 셈이다.

공유제 아래서도 도시와 농촌의 토지 사용은 차이가 있다. 이는 분명히 농촌에 불리한 방식이다. 국가가 소유권을 보유한 도시 토지는 개인이 사용권을 가지면서 이를 매매하거나 양도할 수 있다. 즉 시장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집체가 소유권을 보유한 농촌 토지는 개인의 사용권 매매와 양도가 불가능하다. 집체 토지는 농업용 및 집체 구성원의 택지로만 사용할 수 있다.

결국 농민들은 집체의 땅에 묶여 있는 소작인에 불과한 것이다. 농민은 땅(사용권)을 팔아 현금화하기 어렵고 거꾸로 도시민도 농촌 토지를 사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처럼 도시인이 귀농을 하는 것은 차단돼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농민은 도시 후커우(戶口·호적)을 획득할 수 없고 도시민도 농촌 후커우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

중국 남부 구이저우의 한 농촌 마을의 버섯 재배 농민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탈빈곤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매체에서 선전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여기서 농촌 탈빈곤 사업이 어려운 이유가 나타난다. 중국 농촌경제는 향후에도 제대로 발전하기 어려울 듯하다. 한국 등 해외에서는 농사일을 하기 싫으면 땅을 팔고 그 돈을 자본으로 도시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농민이 농촌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현재도 도시로 간 농민이 도시민으로 되지 못하고 농민공으로 생활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가 공무원들을 총동원해 농촌의 빈곤 해소에 진력한다고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문제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사업 전개가 더디다. 농촌에 절실한 도시로부터의 투자자본 수혈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난달 25일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은 토호를 타도하고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주면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실현했다”고 외쳤다. 이는 토지개혁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인 1949년 한국에서도 이승만 정부 아래 토지개혁이 진행됐었다. 차이가 있다면 중국은 토호들에게 빼앗은 토지들을 다시 국가가 갖게 됐다는 점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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