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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왜 남의 이익만 공유하나

정상범 논설위원

기부 강요 이어 '이익환수제' 거론

편 가르기 정치로 사회갈등만 조장

義賊 행세, 국가의 역할일 수 없어

기업의 일자리 확대부터 지원해야





“자발적 기부가 실패해서 그런가.” 최근 정치권에서 들고나온 이익공유제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익공유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 혜택과 이익을 받은 곳이 있다면 적당히 나눠 갖자는 얘기다. 온라인 거래가 늘어났다며 플랫폼 기업을 겨냥하더니 만만한 은행권이 공략 대상으로 찍혔다. 기업들은 팔 비틀기라며 ‘제2의 국정농단’까지 거론하는 등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자발성을 강조했지만 그럴수록 더 불안하다. 정부 재정이 한계에 이르자 결국 민간 호주머니를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여당은 협력이익공유법과 함께 사회연대기금법·손실보상법 등 이른바 상생연대 3법을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실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해 5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초기에 기부 사례가 속출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신청 화면이 교묘하게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방식으로 이뤄져 정부 음모라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당시 정부·여당은 고소득층의 자발적 재난지원금 기부를 외환위기 시절 ‘금 모으기 운동’에 비유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여권에서는 차제에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범사회적 운동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모금액은 2,800억 원에 머물렀다. 당초 대상자 중 10~20%는 기부에 나설 것으로 봤지만 2%에 그쳤다. 더 이상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겠다며 이익공유제를 내놓았을지 모를 일이다.

제17대 대선을 1년여 앞둔 지난 2006년에도 지금처럼 양극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청와대에서 신년 회견을 통해 양극화 해소를 신호탄으로 쐈고 여당은 ‘5대 양극화 해소 대책본부’라는 당내 기구까지 띄웠다. 부동산 투기 등 불로소득 원천 봉쇄, 하도급 질서 등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영세 자영업자 지원에 이어 심지어 남북 간 양극화 해소 방안까지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코로나19 탓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을 뿐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당내에 ‘포스트 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라는 조직을 만든 것도 판박이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우리 정치권의 낯익은 장면이다.



여당이 또다시 양극화·불평등 간판을 내건다면 이분법적 사고를 유발해 편 가르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수혜자와 피해자,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눠 절대다수의 표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 코로나19 탓에 불평등이 초래됐다는 핑곗거리도 생겼으니 선거 카드로 이만한 게 없다. 대책 기구를 만들고 세상에 없는 사례를 연구한다고 양극화 문제가 해소되는가. 코로나19로 진정 이익을 챙긴 기업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는가 제대로 따져봤는지 의문이다. 세계 유례없는 이익공유제는 우리 기업에 심각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어느 대기업은 해외 정부로부터 현지 협력사에 핵심 기술 이전과 자금 지원을 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접하고 난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협력사와 상생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똑같이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미래 경쟁자를 키우는 꼴이었지만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이익공유제가 강행된다면 해외에서도 똑같이 이익을 나눠 갖자고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치가 가진 자를 적대시하고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판국에 자발적으로 기부에 나설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 시중에서는 효과가 신통찮으면 이익환수제로 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와 조세 제도의 기본에 맞춰 이익을 많이 내면 세금을 더 거두면 된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여당 의원과 고위 공직자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재산이 늘어난 이들이 수두룩하다. 더 이상 착한 기업이나 착한 임대인, 착한 세금이라는 솔깃한 말로 국민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 돈 많이 벌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면 그게 바로 착한 기업이다. 기업에 부담만 떠넘기기보다 국민 정서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남의 주머니를 털어 나눠주는 로빈후드 행세는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정상범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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