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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파나마 철도 개통

1855년, 운하 건설로 이어져





1855년 1월 28일, 파나마 철도가 뚫렸다. 길이 76.6㎞. 쿠바와 멕시코(1837년), 칠레(1840년), 페루(1851년)에 이어 중남미 다섯 번째 철도였다. 짧고 최초도 아니었으나 파나마 철도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노선으로 평가받는다. 파나마 운하가 들어서기 전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데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파나마 지협(地峽)이 역사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16세기 후반. ‘황금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스페인은 세계 최대 은 광산인 포토시를 비롯한 식민지에서 캐낸 은과 금의 운송을 위해 정글에 길을 냈다. 안데스 산맥 서쪽에서 채굴한 금과 은괴는 선박(남미대륙 서해안)-육로(파나마 지협)-선박을 통해 대서양 건너 스페인 본국으로 넘어갔다. 금과 은의 고갈과 스페인의 쇠퇴로 ‘황금의 길’ 역시 기능을 상실한 19세기 들어 ‘철도 건설’이라는 새 구상이 나왔다.



중남미 독립의 아버지이자 그란콜롬비아 대통령 시몬 볼리바르, 앤드루 잭슨 미국 대통령, 영국을 견제하려던 프랑스까지 철도 건설을 추진했으나 구상에 그쳤다. 험준한 지형 탓이다. 꽉 막혔던 ‘황금의 길 철도 계획’에 생명을 넣은 것도 황금. 1848년 초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으로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많아지며 구상이 되살아났다. 금 발견 직전 1만 명 선에 머물던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1852년 25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운송 수요가 넘쳤다.

문제는 시간. 뉴욕에서 남미대륙 남단을 돌아 샌프란시스코까지 뱃길로 145일이 걸렸다. 거칠기로 악명 높은 마젤란 해협에서 좌초될 위험도 컸다. 대안으로 급부상한 게 이동 시간을 3주로 단축할 수 있는 철도였다. 미국 자본가들은 100만 달러를 투입, 4년 8개월 만에 철로를 뚫었다. 난구간이 많아 공사비가 8배나 들어갔지만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맛봤다. 미국 동부의 기선 회사들도 부를 쌓았다. 빈 배 회항을 꺼리던 선주들은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을 찾아내 퍼트렸다.

운임을 25달러나 받은 파나마 철도 회사는 약 14년간 뉴욕 증시의 대장주 자리를 지켰다. 미 대륙횡단철도 완성(1869년)으로 파나마 철도 역시 기우는 것 같았으나 반전이 일어났다.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을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국은 철길을 따라 81.6㎞ 길이의 파나마 운하를 팠다. 더 많은 사용료를 요구하는 콜롬비아에는 극약 처방도 서슴지 않았다. 지역민을 부추겨 내전을 유발, 파나마를 독립시키며 운하를 손에 넣은 것. 파나마 철도와 운하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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