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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 워즈 II: 패자의 역공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중앙銀의 유동성 공급 약속만으로

금융위기 해소된 적 충분히 많은데

므누신은 되레 비상대출 지원 폐기

새 정부 '도구' 빼앗은 불순한 시도

폴 크루그먼




우리는 선거에 패한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억지 소송, 파괴적이고 발작적인 분노 표출과 그런 그의 언동에 전혀 토를 달지 않는 공화당의 태도는 비관론자들이 제시했던 최악의 예상마저 뛰어넘었다.

그래도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뒤집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신 그는 퇴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크고 작은 일을 벌여가며 미국 부수기에 몰두할 것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조 바이든 재임 중 국가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기 위한 금융 위기의 무대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비상 대출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 장관의 돌발 선언은 표면상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지금 금융시장은 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내가 패배하는 순간 당신의 401(k)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바이든의 승리 이후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더구나 비상 대출 프로그램에 할당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사용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해당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므누신 장관의 발표에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 연준만큼 금융 위기에 관해 잘 아는 기관도 없다. 비상 대출 프로그램 폐기와 관련한 연준의 거센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므누신은 공화당 진영이 수개월 혹은 수년 후에 터지기를 원하는 금융 위기가 현실화 할 경우 이를 수습하기 위해 차기 행정부가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할 결정적인 도구를 치우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금융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 ‘패닉’이라는 일반적 용어로 쓰였다. 연준의 창설을 이끈 1907년의 금융 위기 역시 ‘1907 패닉’으로 불렸다. 패닉을 일으키는 원인은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가시적인 원인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패닉은 대중의 신뢰 상실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신뢰 상실은 경제를 관통하는 돈의 흐름을 얼어붙게 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대중 심리가 패닉에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연적으로 대중 심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합리적 행동들이 집단적 재난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자기 완결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고전적인 대규모 은행 예금 인출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예금주들은 은행의 기본적인 자금 건전성을 믿으면서도 서둘러 그들의 예금을 인출한다. 은행의 건전성과는 상관없이 대규모 인출 사태 자체가 예금 지급 불능 사태로 연결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연준 같은 공공 기관들이 개입한다. 지난 19세기 이후 연준을 비롯한 공공 기관들은 패닉 상황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 기관들에 자금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줄도산을 막아내는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패닉을 진정시키려 데는 의외로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때 유동성을 제공하겠다는 중앙은행의 약속만으로 패닉을 진정시킬 수도 있다.



2012년 남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스페인은 차입 능력을 상실했고 국채 이자율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국가 부도 사태는 나오지 않았다. 영국 역시 스페인과 다를 바 없는 심각한 금융 위기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체적인 통화 대신 유로를 사용하는 스페인은 금융 기관들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투자자들의 두려움이 패닉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실제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에 몰렸다. 반면 자국 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영국은 이런 위기에 충분한 면역력을 갖고 있었다.

남유럽 금융 상황이 악화하자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는 2012년 7월 유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고, 투자자들이 그의 발언을 금융 위기에 몰린 유로권 국가들에 유동성을 제공하겠다는 ECB의 확약으로 받아들이면서 금융 위기는 곧바로 해소됐다. 물론 ECB가 남유럽 국가들에 실제로 풀어놓은 현금은 없었다.

올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3월과 4월의 수 주 동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지면서 미국은 대형 금융 위기를 눈앞에 두게 됐다. 그러나 연준은 재무부의 뒷받침 속에 회사채와 지방채를 사들이는 새로운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증강했고 결국 대규모 자산 매입 없이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는 약속을 앞세워 금융 위기를 비껴갈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팬데믹이 손쓸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환자들의 입원율은 지난봄에 비해 훨씬 높아졌고 지금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백신이 곧 나올 것이라는 희소식 탓에 새로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차 금융 위기를 촉발하지는 않겠지만 아직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금융 위기와 싸우는 데 필요한 도구를 없애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으로 보아 더 이상 비상 대출 프로그램이 필요치 않다는 므누신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그의 후임자가 이 같은 조치를 쉽게 뒤집을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여러 다른 상황들을 감안할 때 므누신의 조치는 바이든 재임 중 경제 재난 발생 가능성을 높이려는 불순한 시도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만 해도 므누신은 트럼프 행정부 관리 중 개인적 평판이 나쁘지 않은 몇 안 되는 관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출구로 나가기 전에 미국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트럼프 충성주의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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