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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민들 세금 견디지 못해 집 팔도록 몰아가선 안돼" [청론직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국토부 차관)>

주택공급 적극 확충보다 세금으로 집값 잡는데 치중

집값 안정 위해 과도한 稅부담 불가피 인식은 잘못

임대차보호법·재건축 규제 등 부작용 많은 정책 고쳐야

재건축초과이익환수·분양가상한제 등 재검토 필요

국토교통부 차관을 지낸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국민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 수밖에 없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24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불안은 되레 증폭되고 있다. 공시 가격 현실화로 부동산 관련 세금이 크게 늘며 조세 저항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차관으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 공급을 적극 확충하기보다 세제를 통해 집값을 잡는 데 치중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 수밖에 없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 후폭풍으로 전세 대란이 벌어지는 것과 관련해 “정책의 의도가 선해도 사람들의 행동 원리에 반하면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며 “당국자는 정책 도입 전에 자신이 시장 참여자라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인 김 교수를 2일 만나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와 대안을 들어봤다.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여전히 시장이 불안한데.

△정부가 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노력했는데 뜻대로 잘되지 않아 안타깝다. 처음부터 공급은 부족하지 않은데 투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판단한 것이 잘못됐고 시장의 반응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매매 시장에서는 대출 제한과 토지거래허가제 등 규제를 강화한데다 취득·보유·양도세 등 모든 세금을 동시에 올리는 바람에 사는 것도, 가지고 있는 것도, 파는 것도 모두 어려워졌다. 임대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외려 더 불안해졌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하는 것인데 매매와 임대 시장 모두 안정되지 못했고 정책 수혜자가 누구인지 묻기에 이르렀다. 정책 시행 후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원인을 분석해 수정해야 하는데 당초 방향을 고수하며 추가 대책을 내놓다 보니 대책 발표 주기가 짧아지고 시장의 신뢰는 갈수록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최근에는 전세 대란까지 확산되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다. 역대 정부가 한 번씩 고민했지만 도입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수급의 괴리가 있는 한 모든 임차인을 보호할 수는 없고 제도 정착 과정에서 임대료가 큰 폭으로 올라갈 것을 우려해 조심했던 정책들이다. 이들 정책을 도입하면 수요가 늘면 늘었지 줄지 않고 공급은 중장기적으로 줄면 줄었지 늘지 않는다. 임차인 보호법이라지만 기존 임차인과 신규 임차인의 갈등, 즉 을과 을의 갈등을 부른다. 실제로 전세가 귀해지고 보유세 강화 등 다른 정책의 파급 효과까지 더해져 임대료가 오르게 된다. 정책의 의도가 선해도 사람들의 행동 원리에 맞지 않으면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정부가 호텔 개조까지 동원한 전세 대책을 내놓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공공이 공급하는 비(非) 아파트 임대주택을 늘리고 호텔과 상가를 개조해 주거 공간으로 만드는 조치가 임대차법으로 촉발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본 해법은 임대차법을 다시 고치고 다주택 보유자 중과세 등을 수정하는 것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몇 달 지나도 전세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정리돼도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부동산 정책이 필요한가.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전월세가 안정된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잠실 재건축 아파트 1만 8,000여 가구를 준공해 입주했을 때다. 임대인은 세입자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고 임대료는 뚝 떨어졌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결국 신규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임대 시장도 안정된다. 그런데 민간 임대주택 대부분은 다주택자들이 공급한다.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인정할지 아니면 투기꾼으로 규정해 중과세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책 선택이 중요하다.

-지방이 들썩이자 규제책을 꺼냈지만 또 다른 곳에서 풍선 효과가 생기고 있다.

△정부가 규제지역을 지정하면 수요는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흐르고 정부는 따라가서 또 규제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은 끊임없이 정부 정책을 피해갈 궁리를 하고 정부는 다시 쫓아가는 형국이다. 정부와 시장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해야 악순환을 끊어낼까.

△주택 정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소득 증가로 수요가 늘어나는 고품질 주택을 민간에서 공급할 여건을 만들고, 자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를 확충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하느냐인데,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의 집값을 정부가 책임져야 할 명분도 약하고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수요에 부응해 시장에서 주택을 원활히 공급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공급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공급에 대한 시장의 인식과 정부의 판단에 괴리가 있다. 정부는 주택보급률이 전국 평균 100%를 넘어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지표는 낡은 주택과 입지나 기반 시설이 미흡해 기피하는 주택, 빈집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집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지 않아도 지역에 따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주택이 부족한 것이 본질이다. 그나마 서울의 보급률은 96%에서 정체돼 있다.

-시장에서는 재건축 아파트 규제 완화 등이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정부는 미온적이다.

△서울에서 공급을 늘리는 길은 기존 주거지 고밀도화와 개발제한구역 토지 활용 말고는 없다. 정부로서는 재건축 규제를 풀면 당장은 값이 오를 것이고 공급 효과를 보려면 오래 걸리니 추진할 이유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재건축을 막으면 강남의 신축 아파트 소유자들이 이득을 본다. 실제로 서울에서 입주 후 5년 이내 아파트가 줄고 있다. 신축이 갈수록 희귀해지니 값이 오르고 이들이 상승을 주도한다. 길게 보고 재건축을 허용해야 한다. 지하철 건설을 보자. 길이 막혀 지하철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에 따라 공사를 하면 처음에는 이로 인해 길이 더 막히지만 끝나면 정체가 풀린다. 집값도 공급이 가시화하기 전에는 오르지만 물량이 나오기 시작하면 안정된다.

-정부가 공공 재건축을 꺼냈지만 시장은 잘 움직이지 않는데.

△공공 재건축은 공공이 재건축을 주도하고 이익 대부분을 회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재건축을 허용하겠다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임대주택 건설 의무, 용적률 한도 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관련 세금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가 크게 늘어난 데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1%만 내는 특별한 세금이라고 했는데 세율과 과표가 동시에 오르고 집값이 급등하니 대상 인원과 부담 수준이 급격히 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전용 85㎡ 아파트 보유세가 1,000만 원에 달하고 몇 년 후 수천만 원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강남을 넘어 서울과 일부 대도시 국민도 보유세로 큰 부담을 느낄 것이다. 조세의 기본 목적은 공공 서비스를 위한 재원 마련인데 최근 세제는 투기 억제를 통한 집값 잡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과중한 세금 부담도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잘못됐다. 세금은 소득에서 내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주택 소유자들에게 집을 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도록 몰아가서는 안 된다.

-정부는 주택 공시 가격을 시가의 90%까지 올리기로 했다.

△공시 가격 인상 논의는 과거에도 많았다. 세 부담의 형평성을 위해 주택 유형 간 과표 현실화율 격차를 해소해야 하며 현실화율은 납세자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 미국 사례를 보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출 예산 재원 중 재산세로 조달할 금액을 먼저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과표와 세율을 정한다. 그래서 과표 현실화율이 100%인 도시는 세율이 낮고 현실화율이 낮은 도시는 세율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세금을 어디에 쓸지, 세 부담을 얼마까지 왜 높여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일단 높여야 한다고 한다. 세율이 정해진데다 누진 체계여서 공시 가격을 올리면 세 부담이 자동으로 급증한다. 보유세의 합리적 부담 수준과 목표를 정하고 과표와 세율 수준, 누진 구조 등을 검토할 시점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란의 원인 중 하나를 과거 정권에 돌렸다. 과거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 등을 담당했는데.

△3년 반 넘게 20여 차례의 대책을 내놓은 뒤 이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저것 다 시도해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좌절감의 표시로 본다. 사실관계도 틀렸다. 내년에 주택 준공 가구 수가 줄어드는 것이 이전 정부에서 주택 건설 인허가를 적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2013~2016년 연평균 인허가 실적이 2018~2019년보다 훨씬 많았다. 기본적으로 인허가는 지자체장 소관이다. 지난 정부의 규제 완화에 대한 여파가 남아 있다는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완화된 규제는 이 정부 들어 원상회복됐거나 오히려 강화됐다. 지난 정부 때 저금리와 대출 규제 완화 등 유리한 조건에서도 집을 사지 않던 사람들이 현 정부 들어 적극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과 유엔해비타트 등에서 일한 적이 있다. 미국 시러큐스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서강대 경제연구소장·교무처장·대외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재정경제부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과 한국주택학회 회장, 국토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고 2015년 5월부터 2년 동안 국토교통부 제1차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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