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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겨울전쟁의 정신

복지국가 핀란드의 숨은 비결

압도적인 장비와 병력 우위를 지닌 소련군의 발목을 잡았던 핀란드군이 스키를 타고 설원을 이동하고 있다.




1939년 11월 30일 오전 7시, 소련 군 대포 2,000여 문이 핀란드 군을 향해 불을 뿜었다.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를 비롯해 비푸리·투르쿠 등 대도시 21곳도 폭격을 받았다. 전면 침공을 감행한 소련은 자신감이 넘쳤다. ‘목청만 높여도 꼬리를 내리는 핀란드인들은 총 몇 발만 쏘면 바로 손들 것(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회고)’이라고 여겼다. 초전 양상도 그랬다. 개전 1주일까지 핀란드 군은 계속 밀렸다.

소련의 개전 명분은 정당방위. 국경 마을을 먼저 포격한 핀란드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했다고 조작했다. 국제연맹의 ‘침략자 축출’이라는 강수에도 핀란드에서 물러나지 않은 소련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최우선 목표는 국경에서 불과 30㎞ 떨어진 레닌그라드의 안전 확보. 핀란드에 국경을 뒤로 물리면 북쪽 땅을 주겠다며 영토 교환을 제의한 적도 있다. 공업지대와 연안 항구를 언 땅과 바꾸자는 제안을 핀란드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갈등은 끝내 전쟁으로 번졌다.

소련 내부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틈타 독립한 핀란드를 손봐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한때 소련 영토를 침범했던 핀란드에 공산 괴뢰정부를 세울 요량으로 동원한 병력이 45만명. 전차 2,494량, 각종 대포 2,000문, 항공기 700대면 충분할 것이라던 소련 군의 호언장담은 개전 1주일 후부터 빗나갔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도 핀란드 군은 장거리에서 저격하거나 진지에 진입,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설상 위장복을 입고 스키로 종횡무진 설원을 누빈 핀란드 군은 소련 군을 장작 쪼개 듯 하나하나 격파해 나갔다. 대전차 화기가 없어 화염병으로 맞서고 급하면 통나무를 무한궤도에 끼워 넣으며 핀란드는 2월 말까지 소련 군을 묶었다. 소련 군이 크게 증원된 반면 탄약마저 떨어진 핀란드는 영토의 10%를 내주고 불평등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수오미 전사들의 분투는 전사에 빛난다.

핀란드가 얻은 것은 또 있다. 국민 화합과 자주정신. 적백내전까지 치렀던 핀란드는 소련 군이 침공했을 때 전 국민이 항거해 ‘좌우를 떠나 핀란드는 하나’라는 동질감을 갖게 됐다. 원조를 약속했던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끝내 등을 돌리자 ‘핀란드의 문제는 핀란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 의식도 커졌다. 사실상 군사동맹이었던 독일 군에 2차 대전 말기 총부리를 돌린 것도 자주 의식의 발로다. 민주주의와 교육 성취도, 국민소득, 지속 성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핀란드의 오늘날에는 ‘겨울 전쟁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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