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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비 와라 기도해요” 장마철 빗길이 무서운 운전 노동자들

위험한 도로상황에 버스 기사들 ‘초긴장모드’

배차간격·승객 항의 탓에 감속운행 쉽지 않아

시간 쫓기는 배달기사들도 목숨 내놓고 달려

‘비 와서 배달 늦어지면 손님에 욕 먹기’ 일쑤

“재난상황에서는 서로를 격려하는 문화 필요”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유례없이 길어지는 장마에 도로가 일터인 ‘운전노동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위험한 도로 상황에 마음을 졸이는 것은 물론 승객과 배달 물품의 안전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예민해진 고객 반응에 마음을 다치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묵묵히 운전대를 잡는 이들 덕분에 오늘도 시민들은 각자의 목적지에 다다르고 필요한 물건들을 전달받는다.

지난 3일 한강 수위 상승으로 전면 통제된 서울 잠수교. 잠수교 가운데 비에 잠긴 버스 정류장의 모습이 보인다./연합뉴스




지난주 서울 은평구의 한 차고지에서 쉬고 있던 버스기사 고성완(50)씨는 “비가 오는 날에는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라 훨씬 더 피곤하다”며 “오죽하면 제발 내 근무시간이 끝나고 비가 내렸으면 하고 기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도로 곳곳이 파이고 꺼지는 ‘싱크홀’ 현상이 생기면서 버스 기사들은 운전 중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우천 시 버스기사들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열악한 도로 상태만이 아니다. 고씨는 “버스 바닥이 빗물로 미끄러워서 노약자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넘어질까 봐 항상 노심초사한다”고 설명했다.

버스회사 측에서는 기사들에게 ‘우천 시 감속운행’을 당부하지만 그대로 따르기에는 현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고씨는 “앞차가 일찍 출발해버리면 배차 간격이 길어져서 승객도 몰리고 짜증을 내는 분들도 있다”며 “안 그래도 우산을 접고 펴느라 승하차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감속운행하기가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6일 경기도 파주에서는 빗물에 잠긴 도로를 지나던 시내버스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침수돼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구조되기도 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음식점 배달원이 로프와 통을 이용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연합뉴스


사람이 아닌 물건을 싣고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에게도 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부산에서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이모(57)씨는 “길은 미끄러운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정말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기분”이라며 “얼마 전 폭우로 너무 힘들었는데 장마가 오는 8월 중순까지 간다니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7~2019년 발생한 교통사고 분석 결과 우천 시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맑은 날에 비해 35.7%나 높았다. 또 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륜차(오토바이 등)를 몰다가 사망할 확률은 사고 100건당 2.4명으로 승용차(1명)와 승합차(1.5명)보다 높았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이륜차는 자가용에 비해 운전자를 보호할 차체가 없어 교통사고 발생 시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오전 경기 파주시의 한 도로에서 구조대원들이 물에 잠긴 시내버스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배달노동자를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고객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음식배달을 하는 30대 우모씨는 “종종 늦었다고 짜증을 내는 손님들이 있는데 장마철에는 조금만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퀵서비스 기사 이씨도 “‘힘들면 콜을 안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일감도 줄고 배달 동선도 좋지 않은 곳만 받게 된다”며 “배송품이 비에 젖으면 보상해줘야 하는 위험도 떠안고 배달하는데 수고했다는 말은커녕 욕을 들을 때면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운전노동자들의 안전수칙 준수와 시민들의 배려를 동시에 당부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모여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시민들이 모두 책임감을 갖고 서로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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