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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휴일에도, 밤늦게도 일한 계약직 수행 운전기사, 수당 다 받을 수 있을까

임원 외부일정 길어지면 늦게 퇴근… 토요일·공휴일 출근도 잦아

회사는 일한 시간 계산 어려워 '포괄임금' 계약했다고 주장해

법원은 "근로시간 산정 가능한 자료 있으면 수당 줘야" 판결

/사진=픽사베이




최모씨가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소장의 수행 운전기사로 일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 7월이었다. 그에게 육아정책연구소란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래도 국무총리실 산하의 어엿한 국책 연구소였다. 여기서 그는 무기계약직 운전기사로 입사해 같은 일을 했다.

근로계약서를 쓸 때마다 적혀 있는 근로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하지만 계약서상 근로시간대로 일하지는 못했다. 최씨는 매일 새벽 출근해서 차량을 세차, 점검하는 게 일상이었다. 연구소장의 출퇴근길은 물론 외부일정까지 수행했다. 그러다 보면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토요일, 공휴일에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고 일정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환경도 되지 못했다고 최씨는 주장한다. 연구소장이 호출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최씨는 차량에 이상이 있는지 점검하고 안팎을 세차하며 연구소장의 호출을 기다렸다. 정규직 직원의 지시에 따라 우편 처리나 문서수발 업무를 하기도 했다.

최씨는 어느 날 한 달 동안 정해진 근로시간 외에 몇 시간 동안 일했는지 계산해 봤다. 최대 87시간이었다. 그런데 관련 수당을 찾아보니 10시간 동안 근무분만 입금돼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보수규정을 보면 직원이 연장근무, 야간근무, 휴일근무를 했을 땐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돼 있었다. 연구소에 항의했더니 최씨의 근무 형태가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며 포괄임금제에 따라 근로계약을 맺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포괄임금계약은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미리 정해진 시간만 일한 걸로 약정하고 그에 맞는 초과수당만 주는 계약이었다. 이른바 ‘고정OT’로 통한다. 회사는 최씨가 2015년에 연봉계약을 포괄임금제 기반으로 맺어서 임금 인상률이 15%에 달했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중앙법원청사 전경. /서울경제DB


결국 최씨는 2016년 초부터 2018년 말까지 연구소가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중 미지급액 약 2,965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3단독(이준구 판사)는 최씨와 육아정책연구소 사이 포괄임금계약이 체결된 적이 없으니 차량운행일지에 적힌 시간대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주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시간 전에 차량 운행을 마쳤다 해도 자유로운 시간이 보장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있었다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단협, 취업규칙, 근로계약서 등에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을 기본급과 별도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을 경우,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사정이 아니라면 포괄임금제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최씨가 작성했던 차량운행일지가 근태관리에 필수적 자료로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근거로 근로시간을 산정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최씨가 중간중간 차량 관리나 문서수발 등 업무를 하기도 한 만큼 차량을 운행한 시간에만 근로를 제공했다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소송을 대리했던 손익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당사자 간 명시적인 약정이 있고 근로시간 산정이 곤란할 뿐 아니라 근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고정OT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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