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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획·연재
송호근 교수 "소주성은 무지의 결과… 한국형 뉴딜이 정권 운명 좌우"

■'고뇌하는 지식인 표상'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응집하는 국민적 반응성이 'K방역' 일궈

재난지원금 계기로 포퓰리즘의 문 열려..남미형 포퓰리즘 환경 갖춰져

'조국·윤미향 사태' 등 386세대 업적중심적 경향 영향 미쳐

투사 중심의 저항운동으로 뿌리 내린 시민단체 영향력 절대적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는 3일 삼성동 포스코타워 기업시민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적시에 제공된 긴급재난지원금이지만 이를 기점으로 포퓰리즘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거센 파도는 의료 영역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삶을 지배했던 모든 공식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K방역이 전세계의 모범 사례로 호평을 받고 있지만 국가의 실력과 시민의 자질이 그만큼 성장했는지 의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탈출구는 없는지, 정치 권력을 독점한 진보세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던 가운데 ‘고뇌하는 지식인의 표상’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송 교수는 3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타워 기업시민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경제는 투잡족 등 비정규직의 시대를 본격화할 것”이라며 “기업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강제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등의 회계 부정 의혹에 관련해서는 “386세대 특유의 업적지향주의적 성향이 도덕성과 절차적 투명성 등 민주주의의 본질을 놓치게 만들었다”면서 “시민단체 전반에 만연한 나태를 꾸짖고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K방역이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위기관리 경험이 우리 사회에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확산 초기인 2월만 해도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19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와 같은) 의사협회 등 전문가의 견해는 무시됐고 다소 낙관적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적 불만이 커졌고 대규모 감염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방역을 잘 하면서 K방역이 성공 모델로 부상했다. 코로나가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을 저지할 수 있는 독특한 힘을 한국이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코로나의 본질적 특성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코로나19는 전파율이 빠른 반면 치사율이 낮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행사 및 모임 자제, 외출 자제, 재택근무 확대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대대적으로 벌여 접촉을 금지함으로써 방역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기가 닥칠 때 발 빠르게 대응하고 응집하는 국민적 반응성이 작용한 덕분이다. 정부 정책이 잘 돼 방역이 성공한 게 아니라 국민의 반응이 빠르니까 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당초 예상보다도 방역을 잘 했던 것도 사실이다. 민간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이 뒷받침됐고 방역당국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K방역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일각의 평가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선진국 선언은 극히 일부분에 국한될 뿐이다.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 담장에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콜센터나 물류센터 등 우리 사회 약자에 피해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시민의식이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너그럽게 해석하면 이번 경험을 통해 시민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판단하고 싶지 않다. 한국인은 20세기 내내 위기를 돌파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위기에 대한 반응성이 강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걸 두고 시민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공동체적 자발주의(voluntarism)가 작동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에 국한된 위기였다면 이번과 같은 공동체적 자발주의가 작동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단적으로 2011년 우면산 산사태만 해도 주민이 아닌 인근 군부대에서 흙더미를 치웠다.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민의식의 전체적인 기반은 아직까지 단단하지 않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코로나19를 겪은 코로나 세대의 삶은 어떻게 될까.

△광범위하면서도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된 첫 세대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인류는 성장을 향한 끝없는 질주를 해왔다. 지구를 훼손하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고찰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인류사를 뒤흔들 만한 이슈로 등장한 적은 지금껏 없었다. 나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이는 지구가 보내는 아주 작은 경고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 세대의 1차 관심사는 삶의 터전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될 것이다. 지구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질 것이다. 동시에 어떻게 경제 성장을 구가하는가, 새롭게 부상하는 언택트 경제로 어떻게 안착할까로 귀결될 것이다.

-바이러스의 역습은 생존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삶의 방식도 크게 변할 것 같은데.

△지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직접 이동하는 대신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대체 수단이 뜰 것으로 보인다. 환경 관련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인간 행위의 15% 정도가 탄소 배출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줄이려면 일종의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을까 싶다. 의식주를 비롯한 개별 인간의 행위를 측정해서 탄소세를 부가하는 식이다. 이동량 자체가 감소하면서 모빌리티 규모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도시 문명에도 일대 변화가 닥칠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도시 문명의 진화와 궤적을 함께 하는데 도시가 해체되고 농촌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삶의 방식, 삶의 풍경 자체가 크게 바뀔 것이다.

-2013년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통해 산업화 시대를 일군 베이비붐 세대의 쓸쓸한 자화상을 그렸다. 386세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규정하는지 궁금하다.

△정치, 경제,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386세대가 장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3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와 겹치는 지점이 상당히 있다. 70년대 학번의 가치관과 80년대 학번의 가치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 세대가 열망했지만 해내지 못한 것을 완성하면서 다음 세대에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386세대의 역할이 끝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번 총선을 보면 향후 7~8년 지금 권력이 유지될 것이다. 보수는 이미 무너졌고, 보수의 무덤 위를 진보가 질주하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신천지를 만들어주고 퇴장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도 그렇고, 이번 윤미향 사태와 정의기억연대 문제만 봐도 진보 세력의 모순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주주의를 해석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70년대 학번은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면 80년대 학번은 행동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가 도덕 등 이상적 가치를 따지는데 반해 80년대는 실천 행위의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386세대가 70년대 학번을 비판한 핵심 구호가 ‘당신들은 말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들의 유산에서 벗어날 것이다’였다. 이미 상당히 오랜 시간 전에 (70년대 학번의 한계에서) 벗어났고, 민주주의를 향해 돌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윤미향 사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일부 잘못이 있어도 그간 진보가 쌓은 역사적 성과보다 (허물이)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386세대의 프레임은 실적과 업적 중심으로 작동하면서 약간의 과오나 잘못을 덮어주는 경향을 보인다. 정의나 공정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보다는 현실 정치에서 투쟁하면서 체득한 규범이나 문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강화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논쟁을 할 겨를도 없이 투쟁의 시대를 통과한 경험의 특수성이 정치권력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금 정권을 향해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가 없는 것도 방향이 정해지면 다른 말은 듣지 않고 돌진하는 식으로 단련돼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칼럼을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말을 해도 소용 없으니 체념할 수 밖에 없다.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는 3일 삼성동 포스코타워 기업시민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적시에 제공된 긴급재난지원금이지만 이를 기점으로 포퓰리즘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한국형 시민운동의 한계도 이번에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시민운동이 가장 강력한 나라인 동시에 시민참여율은 가장 낮은 이질적인 특성을 보인다. 시민운동단체의 시민참여율은 6% 수준인데 영국(80%), 스웨덴(60%), 미국(40%) 등 서구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일본(10%)보다도 낮다. 하지만 시민운동단체의 영향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하다. 이는 독재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해 투사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태생적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촛불 시위만 해도 시민운동단체에서 파생된 게 아니라 각 가정에서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다른 나라의 경우 가정과 광장 사이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시민운동단체가 하는데 우리는 이를 건너뛰고 가정에서 광장으로 나왔다. 시민운동단체의 지향점이 시민보다는 중앙 정치 무대를 향하고 있다는 점도 시민과 유리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시민운동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의 변화에 일조했다면 (윤미향 사태처럼) 개인의 치부는 별 게 아닌 것이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시민운동의 명사로 나서긴 어려운 게 현실이고 대다수 시민운동단체가 침묵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386세대 특유의 업적지향적 성향이 높은 도덕성과 절차적 투명성 등 민주주의의 본질을 놓치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사무실에서 보좌진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운동가의 도덕성이 크게 훼손됐는데 결국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서구 유럽에서도 초기 시민운동 태동기에는 회계 관리가 철저하지 못했다. 세월이 가면서 자정 작용이 작동했고 선진화된 문화와 조직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민참여율 자체가 낮다는 게 큰 한계다. 회비만으로 운영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운동단체의 정치화가 급속히 전개되는 것이다. 예컨대 시민운동단체 어느 곳도 성명서를 발표할 때 회원 개개인의 동의를 구하진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인 절차조차 밟지 않고 내리는 의사결정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민주주의를 조기 달성하기 위해 비민주적 방식으로 시민운동을 해왔고, 그런 작동 방식이 한국형 시민운동단체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다. 윤미향 사태를 계기로 그러한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차제에 시민운동단체가 무의식적으로 젖어 있는 나태와 무감각을 반성하고 스스로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국민에게 상처 끼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386세대의 행동중심적 경험이 현실 정치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않나.

△코로나19처럼 사회 전체에 충격을 가하는 위기가 오면 탈출구를 찾거나 변화를 이끄는 위기 대응력은 매우 탁월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대표적이다. 방향이 서면 실행은 매우 신속하게 이뤄진다. 만약 보수당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풀렸을지 의문이다.

-포퓰리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적시에 제공된 긴급재난지원금이지만 이를 기점으로 포퓰리즘의 문이 열리고 있다. 포퓰리즘이 팽배할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거대한 집권 여당, 상대적으로 대항 세력은 작고 경제 위기는 눈 앞에 닥쳤다. 남미형 포퓰리즘이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배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역시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짙다.

-코로나 사태로 묻히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은 따져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행동력이 강하다는 것은 달리 해석하면 잘못된 판단을 고집하면서 끝까지 밀고 나갈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소득주도성장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소주성 정책은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보자는 식이랄까. 80년대 운동권에서 내재화했던 헤게모니 문법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옳은 판단 하에 실행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현실 진단이 틀렸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복안이 없는 게 집권 여당의 한계다. 그런 면에서 한국형 뉴딜의 성패가 현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는 3일 삼성동 포스코타워 기업시민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386세대 특유의 업적지향적 성향이 높은 도덕성과 절차적 투명성 등 민주주의의 본질을 놓치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청와대 초청 강연 때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에 대해 ‘목적은 정의롭지만 수단이 잘못됐다. 아마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당시 장하성 정책실장이 6개월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결국 어떻게 됐는가. 일자리안정기금에 수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실업자는 급증하고 기업들은 힘들다고 아우성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콜센터나 물류센터 등 우리 사회 약자에 피해가 집중되고 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해결 방안이 없을까.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해고와 채용이 수시로 자유롭게 이뤄져야 가능하다. 정부는 근로자의 생계 불안 등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고용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기존 고용보험에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화된 고용 형태를 반영해 ‘제2 고용보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급격한 인상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데.

△2017년 시간당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올해 8,590원으로 급격히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감당할 수준이 돼야 한다. 단적으로 2017년 시급을 기준으로 약 2,000원의 인상분만큼 정부가 부담한다고 했다면 부작용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현행 일자리안정기금은 인상분만큼 고용주가 지급하고 서류를 가져오면 정부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방식인데 이런 수고를 기꺼이 감내할 사업자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정부 지원금을 일부 받느니 해고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어차피 재정을 투입하면서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또 비효율적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근로자가 사업주의 확인을 받아 거주 지역 고용노동청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직접 수령하는 방식이면 더 낫지 않았을까. 돈은 돈대로 쓰고 효과는 반감시킨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재정의 선순환’을 얘기했는데.

△재정·성장·고용 등 세 축을 선순환시키자는 것이다. 정부 재정이 (고용보험이나 실업수당 등을 통해) 고용을 보호하고, (재정이 인건비를 일정 부분 감당하면) 기업은 비용용을 줄이면서 성장하게 되고,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을 늘리고, 늘어난 세금이 재정에 투입되는 선순환을 의미한다. 단, 재정과 성장의 윈·윈 효과가 일어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이 부담을 함께 감당하고 기여분을 나누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에 성장하라고 재촉하고, 고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면서 세금을 올려 (기업을) 쥐어짜고 있다.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일자리를 만들어 나누고 지키는 각각의 역할 분담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면 노조가 (기득권을 양보해 비정규직이나 청년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고,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모든 책임과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주요 경제 행위자의 힘만 빼고 있으니 이는 좌파 정치도 아닌 무지한 정책일 뿐이다.

-탄생 3부작의 완결판으로 ‘국민의 탄생’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

△1894년부터 1910년까지 16년간 시민이란 정체성을 모색하다가 곧바로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공론의 장은 암흑 그 자체였지만 소설과 종교 등을 통해 자아를 깨달으면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발아했고 1919년 3.1운동을 통해 터져 나왔다. 3.1운동은 대한제국의 국민으로서 길거리로 나온 역사적인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국민이 탄생했고, 가슴 속에 있는 국민의식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항일 투쟁으로 이어졌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등을 맡다가 2018년부터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가보지 않은 길’, ‘촛불의 시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인민의 탄생(2011년)’, ‘시민의 탄생(2013년)’에 이어 탄생 3부작의 완결판인 ‘국민의 탄생’이 8월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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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19:18:36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