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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혁명 이전까지 과학은 없었다

■ 책꽂이-과학이라는 발명

데이비드 우튼 지음, 김영사 펴냄

1572년 브라헤 신성 관찰부터

뉴턴이 광학 출간한 1704년 사이

망원경·현미경 통한 시야 확장 등

기존과는 다른 근대 과학 탄생

'점진 발전' 주류 과학사학 반박





세상을 바꾼 중요한 변화에 우리는 ‘혁명’이라는 말을 붙인다. 과학이 발명되기 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환인 ‘신석기 혁명’이 대표적이다. 1만2,000년 전에서 7,000년 전 사이에 일어난 이 변화를 계기로 동물이 가축화되고 농업이 시작됐다. 석기가 금속으로 대체됐고, 인간은 수렵 채집에서 벗어났으며, 문자의 사용과 인쇄의 발달이 더해져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리고 17·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간의 삶은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된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우튼은 이 시기의 과학 발전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유하며 ‘과학혁명’이라 칭한다. 신대륙 발견이 그저 관점의 전환이 아니듯 17세기 과학 혁명도 단순한 패러다임 변화를 뛰어넘는 인류사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17세기 과학혁명이 있기 전까지 과학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를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석을 통해 하나씩 펼쳐낸다.

신간 ‘과학이라는 발명’은 과학혁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주류 과학사(史)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책이다. 다수의 과학사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혁명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고대부터 과학적 활동이 존재했고, 점진적 진전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기에 ‘혁명’ 같은 것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설명에 대한 반박으로 책은 인류사의 두 개의 순간에 주목한다. 바로 튀코 브라헤가 신성을 관찰했던 1572년과 뉴턴이 ‘광학’을 출간했던 1704년. 저자는 이 사이에 이전 과학과는 다른, 근대 과학이 ‘발명’됐다고 본다.

튀코 브라헤의 ‘새로운 별’(1573)에 실린 1572년 초신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카시오페이아자리 지도./사진=김영사


덴마크 귀족 튀코가 1572년 관측한 신성은 ‘우주는 불변하고, 달 아래 세계와 달 너머의 세계로 구성돼 각기 다른 운동 법칙이 적용된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깨뜨렸다. 튀코는 새로운 항성을 관측한 뒤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15년간 벤섬 벙커에서 연구를 진행했고, 이때의 연구는 천문학을 최초의 근대 과학으로 변모시켰다. 저자는 450여 년 전 어느 날 밤 튀코가 하늘을 응시하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1572년 이래 세계는 지식의 본질과 인류의 역량을 변혁한 거대한 과학혁명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것 없이는 산업혁명도, 우리가 의존하는 현대의 기술도 없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1704년, 아이작 뉴턴이 ‘광학’을 출간한 시점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기 확립된 사실·실험·증거·이론·법칙 등 과학적 사고가 현재까지 이어지며 인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1572년과 1704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과학이 혁명이 된 이유를 설명해나간다.

르네상스기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미지. 아리스토텔레스는 튀코의 신성 발견으로 시작된 과학혁명 전까지 자연계에 관한 모든 지식의 기초로 여겨졌다./사진=김영사




방대한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언어’다. 흔히 새로운 과학 하면 갈릴레이의 망원경, 보일의 공기펌프, 뉴턴의 프리즘 같은 ‘물리적 도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책은 과학의 언어들에 집중한다. 사실·실험·가설·이론·자연법칙·확률·증거 등의 ‘지적 도구’가 그것이다. 물론 톱과 망치, 망원경 같은 물리적 도구들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감각을 확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낱말에 불과해 보이는 지적 도구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함축한,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변화시킨 중요 요소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총 4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바꾼 역사적 사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불러온 지적 변화들을 추적하면서 ‘발견(discovery)’이라는 개념의 등장을 분석한다. 2부에서는 15세기 초에 시작해 18세기까지 이어지는 ‘보기(sight)’와 관련된 변화를 다룬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통한 인간 시야의 확장, 원근법 회화의 발명이 천문학-수학으로 이어지며 ‘정확성’이라는 과학의 특징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3부는 이 책의 핵심인 ‘과학의 언어’에 관해 이야기하고, 4부에서는 과학 혁명의 결과들을 보여준다. 산업혁명이 흔히 알려진 18세기 후반보다 더 일찍 시작됐고, 과학 혁명에 가깝다는 주장은 꽤 흥미롭다.

마지막 장의 타이틀이 회의론자 미셸 드 몽테뉴의 화두 ‘나는 무엇을 아는가?’인 점은 의미심장하다. 몽테뉴는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은 필연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가 살던 16세기 과학에 적용하면 전적으로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17세기 혁명 이후 현재로 이어지는 과학은 몽테뉴 시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게 저자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입증한 주장이다. “인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오류를 범하기 쉬운 존재지만, 우리는 신뢰할 만한 지식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워왔다. (중략) 지난 600년 동안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지적·물질적 도구들을 빚어왔다.” 몽테뉴의 회의론적 질문은 역설적으로 답해준다. 1574~1704년 사이 일어난 과학혁명은 이전과 다른 완벽한 발견이었음을. 4만3,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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