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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재판 3년→1년 짧아지는데…'상고법원' 놓고 고민 빠진 法

대법관 1인당 사건 연 4,000건 처리

업무 과중으로 선고 늦게 날 수밖에

"상고법원이 그나마 현실적 해결책"

국민들은 신속한 재판 받을 수 있어

"'사법농단' 오명 벗어야 성공 가능"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3년 걸릴 재판이 1년 정도로 기간이 줄어들 테니 국민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제도예요. 다만 사법농단과 결부돼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게 문제인 거죠.”

최근 상고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대법원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상고법원 신설을 둘러싼 법원의 고민이 깊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는 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처리하는 곳이다. 앞서 2014년 말 국회에서 상고법원 설치에 관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2016년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일선 법관 다수는 상고법원 신설이 다시 추진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법원에 지나치게 많은 일이 몰리는 현상을 해결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상고법원 신설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연간 4,000여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늘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대법관들에게는 자신이 맡은 사건을 깊이 고민하고 논의할 여유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이러한 업무 과중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상고법원과 상고수리·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 등이 그 예다. 상고허가제는 심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상고심이 진행되는 제도로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서 시행 중이다. 고등법원 상고부는 비교적 가벼운 사건에 대해 대법원 대신 최종 재판을 하는 곳이다.

법원에서는 이 중 상고법원 설치가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지라는 얘기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관은 “초기 비용이 좀 들더라도 상고법원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고허가제는 법원이 상고 여부를 쥐고 있다는 데서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고등법원 상고부안(案)은 각 지역 고법 간 법령 해석이 달라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도 전원합의체에서 의견 일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사회적 중요도가 높은 사건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만큼 대법관 전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인원 과반수가 찬성해야 의결이 이뤄진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방청석에 방청객들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국민들이 ‘빠른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상고법원 설치의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대법원에는 수많은 사건이 쌓여 있는 탓에 정작 충분한 심리와 해석이 필요한 사건은 판결이 미뤄지고 있다. 1심 접수일로부터 2~3년이 지나도 3심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가벼운 사건을 전담하는 상고법원이 만들어진다면 대법원의 업무가 분산돼 해묵은 상고심 사건들의 심리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이는 개별 사건에 대한 대법관의 신중한 검토가 가능해져 사건 당사자의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와도 맥이 통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한 발짝 떨어져 상고법원을 신중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농단 사건의 중심에 상고법원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상고법원 찬성론자들이 법원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2017년 9월 재임 중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에 개입해 재판이 청와대와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뒷배를 봐줬다는 게 골자다.

상고법원 운영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상고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고 대통령의 최고법관 임명권을 사실상 회피,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법관들과 국민들이 경험할 행정상의 편리함을 위해 상고법원이 세워져야 한다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이후에도 대법원은 국회에 상고법원 신설을 포함한 상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하지만 검찰 개혁 등 다른 이슈에 밀려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상고 제도에 관심이 많은 한 법관은 “그간 국회에서는 법원보다는 검찰 개혁에 관심이 쏠려 상고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면서 “국회와 법원에서 상고법원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농단과 얽힌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지울 만큼 철저하게 부정부패를 막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의 무관심이 이어지자 대법원은 지난 1월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분야 전문 지식을 가진 위원들을 모아 법원 자체적으로 상고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하자는 취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향후 위원회 토론 과정에서 상고법원이 ‘양승태 코트’의 숙원이었다는 이미지를 벗고 하나의 대안으로 인정받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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