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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내칼럼
[만파식적]벌지 전투




1944년 가을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독일군을 압박하며 동쪽으로 진격하던 연합군의 유일한 고민은 보급이었다. 보급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연합군의 진격은 잠시 멈췄다. 아돌프 히틀러는 시간을 벌었지만 불리한 전세는 여전했다. “연합군이 약한 지역은 아르덴입니다.” 참모가 던진 이 한마디에 히틀러는 무릎을 쳤다. 양쪽 합쳐 1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벌지(Bulge) 전투’가 개시된 순간이다. 벨기에 아르덴은 전쟁 초기인 1940년 독일군이 연합군을 일순간 격멸해 7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곳이다. 이곳을 돌파해 연합군의 보급기지인 벨기에 안트베르펜까지 점령하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남은 전차와 병력 자원을 대거 모아 아르덴 숲을 공격하는 건곤일척의 전투를 개시했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안개가 끼었다. 공군력에서 완전히 밀리던 독일로서는 최적의 시기였다. 안개가 자욱한 12월16일 독일 정예 기갑사단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23일부터 날씨가 좋아지자 연합군 전투기가 반격에 나서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이듬해 1월 사실상 전투는 끝났다. 벌지 전투를 책임진 독일군 원수 발터 모델은 결국 진격을 시작한 라인강에 패전 장수가 돼 돌아왔고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독일은 벌지 전투로 연합군의 공격을 6일 정도 늦출 수 있었다. 대신 수개월 이상을 방어할 수 있는 군 자원을 한꺼번에 소모해 독일 패망을 6개월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기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초현실적 상황은 벌지 전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벌지 전투에 참전했던 키신저는 “1944년 말이 아닌 지금 무작위적이고 파괴적인 공격의 느낌이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참상이 당시 전투와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벌지 전투는 그나마 보이는 적과의 싸움이었다. 코로나19는 보이지 않아 더 무섭다. 코로나19와의 전투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대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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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5 10:17:19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