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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최초 자본주의' 베네치아의 탄생

421년 교역중개소가 출발점

[오늘의 경제소사] '최초 자본주의' 베네치아의 탄생
17세기 중엽의 베네치아. 전성기를 지났으나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으로 손꼽혔다. /위키피디아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 어디일까. 중국계 미국 사학자 고(故) 황런위 교수는 자본주의가 꽃피운 곳은 영국이지만 기원은 베네치아에 있다고 단언한다.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그는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청교도 정신에서 찾는 막스 베버나 유대인에서 나왔다는 베르너 좀바르트의 학설에도 손을 젓는다. 베네치아의 효율적이고 깨끗한 공화정 체제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봤다. 베네치아는 유별났다. 우선 존속 기간이 길다.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곳으로 이름 높았다.

주민투표를 통해 ‘도제(Doge·총독)’라는 명칭의 최고 지도자를 처음 선출했던 697년을 기점으로 삼으면 베네치아공화국의 역사는 1,100년에 이른다. 공화정이 아니라 자치 지역으로 베네치아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 말년인 421년 3월25일 정오, 교역 중개소 겸 군사적 대피 지역 지정 기념예배를 올린 게 출발점이다. 로마의 12개 유력 가문들은 정변이 일어나면 이곳을 피신 장소로 여겼다. 갯벌 지역이어서 추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건물은 갯벌에 두꺼운 나무를 박아 바닥을 다진 뒤에 올렸다. 산타마리아 교회를 짓는 데만 110만개가 넘는 나무 기둥이 쓰였다.

훈족에 쫓겨 모여든 사람들의 애초 관심사는 농업. 본토의 땅을 직접 부치거나 빌려줘 소출을 얻거나 돈을 벌었지만 차츰 상업으로 눈을 돌렸다. 결정적으로 800년 샤를마뉴의 프랑코 군대 침공을 물리친 뒤부터는 전투에도 자신이 붙어 그리스 서쪽 해안과 에게해의 도서에 식민지를 깔았다. 동서 로마제국으로부터 동시에 자치권을 인정받은 베네치아는 중계무역과 지중해 운송사업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했다. 베네치아의 번영은 질투를 부르고 제노바 등과 80년 넘도록 치열한 패권 다툼도 벌였다.

인구라야 고작 17만명에 불과했던 베네치아는 세계사의 변곡점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십자군을 수송하고도 운임을 못 받자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온 유럽의 군대에 포위됐으나 반격전을 펼친 적도 있었다. 베네치아의 성공 비결은 크게 네 가지. 현직 도제도 소액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는 도덕률, 산업을 장려하되 조선과 해운 등은 국유화, 재벌의 탄생과 자본의 집중을 경계했던 경제정책, 평민과 귀족 간 차별을 최소화한 사회 분위기, 한때 유럽의 출판물 가운데 3분의2가 밀집했을 정도의 학구열 등이 맞물린 덕분이다. 궁금하다. 한국 사회는 베네치아가 보였던 네 가지 미덕 중 어떤 것을 갖고 있는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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