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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역사로 들어온 미노스 신화

1900년 英 에번스 발굴

[오늘의 경제소사] 역사로 들어온 미노스 신화
일부 복원된 크노소스 궁전. 아서 에번스 교수는 ‘20세기 재료로 기원전 20세기를 복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사진=위키피디아

1900년 3월23일, 크레타섬 중북부 크노소스. 영국 발굴팀이 첫 삽을 떴다. 발굴 대상은 미노스궁전. 독일 하인리히 슐리만의 1870년 트로이 발굴 이후 크레타에도 각국의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발굴 허가부터 현장의 안전까지 기대하기 힘들었다. 신생 그리스와 오스만투르크의 대립으로 유혈이 낭자하던 크레타섬에 자치정부가 설립(1898)된 직후 발굴 허가를 따낸 주인공은 영국인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옥스퍼드대 교수·당시 48세). 발굴을 원하는 경쟁자들보다 두 가지 우위를 갖고 있었다.

첫째, 지지자가 많았다. ‘맨체스터가디언’지의 발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오스만제국에 핍박받는 소수 민족을 옹호해 그리스 정교회 사회에서 평판이 높았다. 두번째는 돈. 유물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던 부친은 제지공장을 소유한 재력가였다. 에번스는 자치정부의 허가를 얻기 전부터 발굴 지역의 땅을 710파운드에 사들였다. 발굴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처음 31명으로 시작한 발굴 인력도 300여명으로 늘어났다. 발굴 초기부터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몇 번의 곡괭이질로 전설이 역사로 바뀌어 현대의 세계로 들어왔다.

발굴 5년 후 에번스는 학술대회를 열어 유럽 학계를 흔들었다. ‘유럽문명의 시작은 트로이와 미케네 문명이 아니다. 미노스 문명이 먼저다. 미케네 문명은 미노스의 후계자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황소로 변장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Europe·유럽의 어원)를 납치해 도착했다는 크레타는 에번스를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 유럽 백인들도 역사의 기원을 기원전 20세기까지 끌어올린 크노소스 궁전 발굴을 크게 다뤘다. ‘타임’지는 ‘크레타섬이 바로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라는 특파원발 기사를 올렸다.

발굴을 시작한 이래 35년간 작업을 계속한 에번스는 2만㎢ 면적에 4층 궁전의 1,200개 방과 복도·벽화를 연구하며 방대한 학술 자료를 남겼다. 훗날 초기 선형문자의 대부분이 재정 수입과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공적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도 받았던 에번스에 대한 비판도 많다. 유적 복원을 넘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없어진 목조 기둥을 콘크리트로 만들고 궁전의 방에 채광시설, 욕조와 수세식 화장실, 방을 식혀주는 물탱크를 넣었다. 발굴 현장에는 재건을 위한 목수와 석공, 대장장이가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기원전 20세기와 기원후 20세기가 섞인 크레타 유적에는 연 100만명의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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