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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68년 국제 금 풀 붕괴

달러 가치의 추락

[오늘의 경제소사] 1968년 국제 금 풀 붕괴

1968년 3월17일 미국 워싱턴 DC. 이틀간 이어진 긴급회의에서 7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런던 금시장 2주간 폐쇄’와 ‘이중금가격제도 도입’이라는 공동선언문을 냈다. 이중금가격제의 골자는 두 가지. 무엇보다 각국 정부가 시중에서의 금 매입을 중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 금풀(pool)이 이렇게 깨졌다. 다만 국가 간 거래는 금 1온스당 미화 35달러의 교환비로 계속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긴급회의의 배경은 국제적인 금 사재기 열풍. 금 수요가 많아져 달러화 약세가 예상되자 가까스로 합의한 대책이 이중금가격제였다.

공동선언문은 ‘각국 정부의 금 보유량은 세계금융질서를 유지하는 데 충분하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랬을까. 더 사들일 여력이 없기에 시장과 연결된 끈을 끊은 것에 다름 아니다. 끈이란 국제 금풀. 1950년대 말부터 위협받기 시작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 등 8개국 중앙은행이 1961년 결성한 금풀은 초기에는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 유럽 중앙은행들이 달러의 가치 유지에 협조한 것은 미국 경제가 강한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달러화만 금본위제도와 연동된 유일한 화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은 곪아갔다. 국제 금풀이 1961년에 성립됐다는 사실 자체가 달러화가 오래전부터 흔들렸다는 얘기다. 7년 만의 국제 금풀 와해는 달러의 가치를 지탱하는 방편 하나가 사라졌음을 의미했으나 미국은 ‘지동설을 외치는 앵무새’처럼 ‘미국 경제는 건실하고 달러화 하락도 없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호언장담은 통하지 않았다. 미국을 믿은 투자자들은 쪽박을 찼다. 달러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8월 ‘달러를 금과 바꿔주지 않겠다’는 불태환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마저도 부족해 1973년 2월 2차 평가절하를 통해 달러 가치를 온스당 42.22달러로 떨어뜨렸다. 당시 유럽 언론은 이렇게 썼다. ‘병든 화폐의 항복 선언.’ 금과 연동되며 절대 가치를 인정받던 미 달러화의 처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이유는 두 가지에 연유한다.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반전과 베트남 전쟁 비용 등 정부 지출의 폭증. 미국은 프랑스 등의 금 사재기로 사태가 나빠졌다고 우방을 윽박질렀지만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은커녕 더욱 악화, 구조화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국의 국가채무는 35억달러 수준. 요즘은 23조달러가 넘는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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